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2013년이 결코 만만치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가 있지만 유럽발 경제 불황의 여파,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 감소,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등 전망이 결코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 만성적인 청년실업, 과열도 걱정이지만 너무 얼어붙은 주택경기 등 사회 각 분야마다 풀기 쉽지 않은 과제가 쌓여 있다.

그래도 새해를 맞는 지금 시점에서는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올해 한국의 문화가 이룩한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외래 관광객이 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했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록됐다. 온 국민을 잠 못 들게 했던 런던올림픽에서 5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고, 체조 펜싱 등 평소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분전은 특기할 만하다. 특히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은 우리 문화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K팝과 영화, 드라마 등 한류의 전 세계 확산도 괄목할 만한 성과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의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2위, 유튜브 조회 수 10억 돌파를 기록하며 세계 전역에서 열풍을 일으킨 것은 일대 사건임이 분명하다. 이 같은 한류의 영향력은 국가 이미지를 개선해 관광수지 적자폭을 줄이고 한국 상품 해외 시장 진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아울러 영화 관객 1억명 돌파, 위키드로 시작한 뮤지컬 시장의 관객몰이가 아이다로 이어지며 내년 문화시장의 전망을 한층 밝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현상은 연말 직장 단위의 송년회를 공연 관람으로 대체하는 분위기가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문화가 생활 속으로 자리잡아가는 증표로서 시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국제무대에서 한국 연극의 경쟁력을 다시 확인한 것도 소득이다. 이자람의 ‘억척가’ 유럽 공연은 단숨에 세계 연극인들의 격찬을 받아 앞으로 여러 나라에서 초청이 이어질 예정이고, 양정웅의 ‘한여름 밤의 꿈’은 런던올림픽을 기념하는 37개국 셰익스피어축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출범이야말로 단군 이래 최고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는 데 여야가 완전 합의해 이룬 결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새로 들어설 정부도 이미 문화예산 2%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를 실현하려는 정부당국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일만 남아 있다. 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 수립을 위해 문화예술인들 스스로의 창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행복한 고민으로 2013년을 맞을 준비를 서두르자.

구자흥 < 명동예술극장장 koo.jah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