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反) 중국 정서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떨어진 자신감이 깔려 있다.” “중국은 강해진 힘을 주변 국가들에 어떻게 쓸지 배워야 한다.”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 아시아 선임자문위원과 진찬룽(金燦榮) 런민대 국제관계대학원 부원장은 11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두 사람은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이날부터 이틀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리는 ‘아산 중국포럼’에 참석했다.

글레이저 자문위원은 2009년 미국과 중국이 베이징에서 한반도 문제를 비공개로 논의할 때 미국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하기도 한 중국 및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다. 미국 전문가로 중국 국제관계학회 부회장, 개혁개방논단(CRF) 상무 등을 겸임하고 있는 진 부원장은 중국 정부에 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중국 지도부 교체 등의 변화에도 양국 관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 부원장은 “중국 지도자들이 일관성을 갖고 이전의 정책을 보수적으로 계승해 왔다”며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도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레이저 자문위원은 “경제 등 대내 문제에 양국 지도자들이 집중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외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 남중국해 영토분쟁 등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선명한 입장차를 나타냈다.
진 부원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는 중국을 봉쇄하기보다는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최근 몇 년간 미국은 해군력의 60%를 동아시아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반면 글레이저 자문위원은 “중국이 강해진 군사적·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를 압박하면서 이들 국가가 미국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다”며 “중국이 자신의 힘을 어떻게 쓸지 제대로 배운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꼬집었다.

지역공동체에 대해서도 입장차는 여전했다. 진 부원장은 “과거 경제 현안을 주로 다뤘던 ‘아세안+3’ 등 지역회의에 미국이 참여하면서 인권, 언론자유 문제 등도 의제에 오르며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레이저 자문위원은 “미국은 중국을 어떤 논의에서도 배제할 의사가 없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에 참여 의사를 밝힌 적도 없는 중국이 초대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양국의 신뢰 구축과 협력이 앞으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두 사람 모두 공감했다. 글레이저 자문위원은 “신뢰가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두 나라가 함께 특정 이슈를 해결하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 6자회담을 예로 들며 “북한 미사일 문제는 양국이 공동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진 부원장도 “두 나라가 공동으로 설립한 복지재단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셀 오바마와 시 총서기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 정기적으로 만나면 좋을 것”이라며 “아름다운 두 사람의 퍼스트레이디가 양국의 우호를 증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중국이 경제 규모(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예측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중국의 세계 패권 장악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봤다. “중국이 경제분야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를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면서 “중국이 GDP 규모에서 미국을 제치더라도 1인당 평균소득과 기술, 군사력, (지식재산권 등) 소프트 파워에서는 미국을 쉽게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노경목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