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9월9일(달러당 1077원30전) 이후 14개월 만에 최고치를 돌파했다. 반면 일본 엔화 가치는 지난 4월20일(달러당 81.54엔) 이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화 강세-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해외 시장에서 일본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전자, 자동차 등 한국 제조업체들의 가격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원80전 내린(원화값 상승) 1082원20전에 마감했다. 지난 14일 이후 나흘 만에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운 것. 이날 원·달러 환율 하락은 미국 재정절벽 우려가 누그러지면서 위험자산인 원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또 이날 엔화 가치는 최근 급락에 따른 반발 매수로 소폭 반등해 달러당 81.26엔을 기록하긴 했지만 최근 7개월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향후 엔화 가치도 약세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는 지난 17일 한 강연회에서 “일본은행의 윤전기를 쌩쌩 돌려 돈을 찍어내겠다”는 등 강력한 양적완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도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날 환율은 100엔당 1331원45전으로 지난 9월13일(1455원39전)에 비해 두 달여 만에 8.5%나 하락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원화만 나홀로 강세를 보이는 것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은 최근 원·엔 환율 하락으로 큰 타격이 예상된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정부가 섣불리 시장 개입에 나서기도 어렵다”며 “미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