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선우 씨(42·사진)의 새 장편소설 《물의 연인들》(민음사)은 작가를 가리고 읽더라도 ‘김선우 느낌’이 난다. 시에서 보여주는 섬세하고 관능적인 언어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소설적 긴장을 확실하게 불어넣었다. 생명력 넘치는 ‘김선우표’ 시를 써 온 그가 소설 영역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물의 연인들》을 그림에 비유한다면 연하지만 강렬한 느낌의 수채화다. 한 인간의 극단적 상실과 공허, 인간이기에 다시 갖게 되는 희망까지 물의 이미지로 토해내듯 그렸다.

평생을 남편의 폭력 속에서 ‘죽은 채로’ 살았던 유경의 엄마 한지숙은 어느날 칫솔 조각을 삼켜 자살한다. 남편을 살해하고 들어간 교도소에서다. 평생을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엄마와 연대해온 유경의 상실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유경은 북유럽에 가보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탄다. 그곳에서 유경은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구원’ 받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조차 몇 년 후 목숨을 잃는다.
연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7년을 보낸 유경은 ‘도와달라’는 내용이 담긴 의문의 소포를 받고 와이강으로 간다. 와이강은 엄마의 유골을 뿌린 곳이자 죽은 그의 연인이 스웨덴에 입양되기 전 버려진 곳. 그 강에서 유경은 죽어가는 수린과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해울을 만난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의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 비, 강, 수국(水菊), 지구, 눈물…. 물을 통해 작가는 생명의 근원을 찾는다. 또 유경의 연인이 죽은 이유와 의문의 소포 같은 장치로 궁금증을 유발하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덕분에 소설은 시종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소설 쓰는 시인’인 그는 시가 자신의 내면과 바깥에서 오는 영감이 만나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영역인 데 비해 소설은 성실한 노동자의 자세로 작업해야만 하는 장르라고 했다.

“시만 쓸 때는 공연도 보러가고 사람들 만나 수다도 떨었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는 사람도 안 만나고 살죠.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시적으로 꺼내는 건 그냥 일상적으로 이뤄지지만 소설은 무조건 책상에 앉고 작업을 해야만 결과가 나옵니다. 성취감은 그만큼 큰 것 같아요.”

그는 1996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2000) 이후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펴내는 사이 장편소설 세 권과 산문집 네 권을 썼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3년 후에는 그가 쓴 시집과 산문집, 소설이 다섯 권씩으로 같아진다.

“그때는 시인이 아니라 ‘작가’라고 포괄적으로 불리지 않을까요. 오히려 좋아요. 장르 간 벽이 너무 높은 것도 한국적 특성이거든요. 외국은 시인이든 소설가든 그냥 작가(writer)예요. 장르별로 나뉘어진 등단제도도 경직된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건 아닐까요.”

그는 현재 원효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세 개의 달’을 불교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물의 연인들》이 내밀한 개인적 이야기를 많이 섞어 쓴 시적인 소설이라면 ‘세 개의 달’은 가능한 한 자신을 배제하며 쓰고 있다고 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