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자, 무신론자, 야행성 인간, 클래식 애호가, 채식주의자, 골초, 약물 중독자…. 한 개의 범주로는 묶을래야 묶을 수 없을 정도로 가치관이나 선호하는 게 가지각색인 이런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상대적으로 지능지수(IQ)가 높다는 점이다. 《지능의 사생활》을 펴낸 진화심리학자 가나자와 사토시 런던 정경대 교수의 주장이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저자는 IQ와 일상생활 속 여러 가치관, 취향, 습관 등과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IQ는 흔히 아는 대로 중간고사 성적이나 업무처리 능력 등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정치 성향, 종교생활, 성적 취향, 수면 습관 등 수치화할 수 없는 일상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 종합사회조사(GSS), 청소년 건강연구, 영국 어린이 발달연구 등 전체 10만여명, 50여년간의 다양한 연구와 실증 사례 분석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결론은 이렇다. 평균적으로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보다, 무신론자는 종교인보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보다 IQ가 높다는 것. 또 IQ가 높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야행성 기질이 강해 늦게 잠들며, 아이돌 그룹의 랩보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것 또한 음악적 취향이 고상해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생활 영역을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과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나눠 IQ와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인간이 진화한 160만년 전에서 1만년 전 사이 신생대 4기 플라이스토세의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환경은 그리 큰 변화가 없었다. 수렵채집인으로서 살아남고 번식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방법은 자연스레 뇌에 각인됐다. 그게 저자가 ‘사바나 원칙’이라고 부르는, 진화적으로 익숙한 습성이다.

그런데 진화적으로 반복적이지 않은 전혀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낯선 문제를 맞닥뜨린 개인을 통해 요즘 말하는 ‘일반 지능’이 진화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IQ와 정치 성향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미국 청소년 건강연구와 종합사회조사 자료에 따르면 ‘아주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20대 초반 청년의 청소년기 IQ는 94.82였으며, ‘아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106.42였다. 영국인에 대한 추적 연구 결과도 비슷했다. 5세와 10세 때 지능이 높은 아이일수록 34세에 녹색당 등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지능이 높을수록 진보주의 가치관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증거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시 수렵사회에서 종족은 유전적으로 친족이거나 생존을 위한 동맹자다. 자신의 식량을 종족 구성원과 나누는 것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익숙한 본성의 표현이다. 반면 낯선 사람들과 식량을 나누려는 성향은 본성에 속하지 않은 완전히 새롭고 낯선 가치관이다.

그런데 전혀 새로운 문제를 앞에 둔 원시 수렵사회의 개인이 그랬던 것처럼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대체로 호기심이 많고, 낯선 것에 빨리 반응한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진보주의 성향을 띠는 것은 진보주의가 순전히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신론자, 야행성 인간, 클래식 애호가, 약물 중독자, 채식주의자, 골초 등의 부류에 상대적으로 지능이 높은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런 성향은 다 ‘진화론적으로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