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프로이센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도약시킨 프리드리히 대제는 옷 갈아입기를 죽기보다 두려워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면서 겨우 현재의 위치에 올라선 자신이 다른 옷을 입으면 너무 낯설어 보이는 데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공포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인류의 먼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프리카 초원을 가로지르면서 미지의 대자연에 느꼈던 공포,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요즘 범죄자가 활개친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느끼는 공포,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영국의 문화사가 스튜어트 월턴이 쓴 《인간다움의 조건》은 피부색과 문화, 사는 곳이 달라도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두려움, 노여움, 부끄러움, 슬픔, 행복을 느낀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감정’이라고 주장하면서 “감정은 생물학적 성질의 것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성질을 지닌 것”이라고 해석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분노를 억누르지 말고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장려하다가도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분노에 대해서는 사회의 결속력을 붕괴시키는 역병이라 여기며 자제, 억제하라고 말한다. 연민과 슬픔의 공개적 표현이 넘쳐나며 ‘심심풀이 애도’라는 말도 생겨났다. 저자는 감정을 개인 내부에서 끄집어내 문화와 역사라는 큰 접시 위에 올려 놓고 들여다봤다.

찰스 다윈이 분류한 인간의 기본 감정 6가지-공포, 분노, 혐오, 슬픔, 놀람, 행복-에 경멸, 수치, 당황, 질투 등 네 가지 감정을 덧붙인 저자는 “감정은 사랑이나 미움 같은 복합적인 심리 상태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감정은 바깥에서 자극을 받았을 때 뇌 안에서 생기는 일시적이고 본능적인 신경 반응이라는 것이다.

감정을 살리고 죽이고는 문화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영국의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 때는 감정은 될수록 억누르고 참아내는 게 좋다고 봤다. 다윈도 감정은 드러내기 시작하면 더욱 굳어지고 강해지기 마련이여서 감정을 자제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달랐다. 억눌린 감정은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응축됐다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뒤틀려 터져 나온다고 했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이 퍼지면서 감정은 끙끙 앓고 삭일 것이 아니라 터뜨리고 봐야 한다는 인식이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확산됐다”고 말한다.

분노가 인류의 역사에 기여했다는 시각도 참신하다. 저자는 “의사당 유리창을 부수고 우체통에 불붙은 걸레를 던지는 등 분노를 분출한 것이 여성의 투표권을 쟁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도 “인간이 문명사회를 쌓아올릴 수 있었던 것은 분노라는 감정을 터뜨린 것 못지않게 권력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죽이고 이겨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과 달리 사람의 아기는 태어나면 목도 잘 가누지 못하는데도 인간이 모든 동물 중 우뚝 솟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갓난아기를 나만의 아기가 아니라 우리의 아기로 여기는 감정의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