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인 부산에 신사옥 부지 매입을 위해 찾았을 때다. 하단동의 어느 허름한 골목에서 풍겨나온 냄새에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유년 시절 많이 맡았던 바로 그 꼼장어구이 냄새였다.

중학교 시절 부산에서 알아주던 부자였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작고하시고 가세가 급속히 기울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가 하신 일이 꼼장어구이 장사였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어린 시절 갑자기 닥쳐왔던 가난의 설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가난을 극복하고자 이를 악물었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필자는 10대 후반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페인트가게 직원으로 일하다가 어린 나이였지만 가게를 인수해 운영했고, 이후엔 서울로 올라와 제과점 등을 운영하면서 갖가지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서른 살 청년이었던 1982년, 동대문 광장시장에 1평짜리로 입주해 바지 도매업을 시작했다. 당시 도매상들은 소매상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필자는 바지를 30~40개씩 어깨에 걸치고 전국 대형 공판장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시장을 개척했다. 옷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세심하게 품질도 챙겼고,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은 즉각 실행에 옮겼다. 돌이켜보면 성공에서 기쁨을 찾는 열망이 왕성한 청춘이었다.

하지만 굴곡 없는 인생은 없는 법. 10여년간 승승장구하다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어음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이 화근이 됐다. 분에 넘치는 일에 손대기도 하고 어음을 빌려주기도 했는데 결국 부도를 맞았다.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고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는 등 나락에 빠졌다.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더 다부진 마음으로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면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갑작스레 불어닥친 가난의 기억과 잦은 실패에서 느낀 시련은 재기를 이뤄내는 진한 밑거름이 된 듯하다.

이런 필자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이 있다. 바로 집무실 책상 서랍 안쪽에 두고 있는 1993년 부도처리됐던 약속어음들이다. 부도난 어음뭉치뿐만 아니라 아내가 썼던 지불 이행각서를 보며 고통의 시기를 되새기고, 자만심이 느껴질 때나 경영의 난제에 부딪칠 때 항상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탈무드에는 ‘승자는 일곱 번 쓰러지면 여덟 번 일어서고, 패자는 쓰러진 일곱 번을 낱낱이 후회만 한다’고 나와 있다. 실패에 후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열정과 인내심을 갖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고 그 DNA를 세상에 전파할 수 있다.

꼼장어구이 냄새, 부도처리된 약속어음 뭉치는 긴 세월 동안 삶의 힘이 돼준 강렬한 기억의 잔상들이다. 세상이 힘들수록,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말처럼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다시 힘을 쌓아 역경을 이겨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병오 < 패션그룹형지 회장 hj02@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