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한 60대 고객이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찾았다. 그는 20억원짜리 수표를 내밀며 “즉시연금에 가입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 PB센터 지점장은 “한 번에 5억~10억원 정도를 즉시연금에 넣겠다는 VIP 고객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즉시연금에 시중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적용금리가 정기예금보다 1%포인트가량 높은 데다 내년부터 과세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지난달 8일 나오면서다. 자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오자 보험사들은 즉시연금 금리를 낮추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삼성·대한·교보 등 상위 7개 생명보험회사들이 지난달 판매한 즉시연금은 총 1조373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전달의 3805억원 대비 3.6배 급증했다. 가입 건수도 7월 1895건에서 8월 8046건으로 크게 늘었다.

일부 보험사의 즉시연금 가입액은 한 달 새 10배 이상 증가했다. 동양생명은 ‘수호천사 명품 바로받는 연금보험’을 지난달 512억원어치 판매했다. 전달의 55억원보다 10배가량 늘었다. 매달 20~30건, 30억~50억원 정도의 즉시연금을 취급했던 푸르덴셜생명은 8월에만 600명이 넘는 가입자를 새로 유치했다. 8월에 끌어모은 자금만 1000억원에 육박한다.

특히 10억~20억원 규모의 거액 예금이 적지 않게 들어왔다고 보험업계는 설명했다. 예컨대 대한생명의 즉시연금 건당 가입액은 지난 6월 평균 1억2427만원이었는데 8월엔 1억7647만원으로 늘었다.

보험사들은 이달 들어 즉시연금 금리를 낮추고 최고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뭉칫돈을 굴릴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삼성생명과 대한생명은 즉시연금 금리를 연 4.5%로, 전달 대비 0.1%포인트 인하했다. 교보생명은 4.5%에서 4.4%로, 푸르덴셜생명은 4.9%에서 4.6%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특별승인을 거치지 않을 경우 최대 10억원까지만 들 수 있도록 내부 조치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즉시연금 금리가 매달 바뀌는 변동금리 방식인데다 개정세법이 입법과정에서 일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가입 열기는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저금리가 계속되면 보험사들이 즉시연금 금리를 대폭 낮출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월 수령액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적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즉시연금

500만원 이상의 목돈을 넣은 뒤 그 다음달 또는 일정 거치기간 후 매달 월급처럼 이자 또는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 현재는 10년 이상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비과세 혜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