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6세 젊은 나이에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고(故) 다이애나빈의 공식 직함은 ‘웨일스 공주(Princess of Wales)’다. 웨일스 출신도 아닌 다이애나에게 왜 이런 호칭이 붙었을까. ‘웨일스 왕자’인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웨일스의 역사가 숨어 있다.

웨일스는 켈트족의 한 갈래인 브리튼족이 그 뿌리다. 로마의 지배에 이어 5세기 게르만족 침입을 받았지만 독립 왕국을 유지했다. 그러나 13세기 에드워드 1세에게 정복돼 잉글랜드에 복속됐다. 에드워드 1세가 원정 중에 낳은 아들 에드워드 2세에게 웨일스 왕자라는 호칭을 부여해 왕위계승자를 이같이 부르는 전통이 생겼다.

웨일스의 법적인 지위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와 더불어 대영제국(UK)을 구성하는 자치국이다. 일찌감치 복속된 탓에 영국 국기(유니언잭)에는 웨일스의 상징이 없다. 스코틀랜드와 달리 독립 의지가 강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잉글랜드와는 다른 민족·문화·역사·언어적 전통을 유지한 ‘나라 속의 나라’다. 지금도 어순 철자 발음이 영어와 판이한 웨일스어를 함께 쓴다. 예컨대 학교 표지판은 영어 ‘School’과 웨일스어 ‘Ysgol’을 병기하는 식이다.

면적은 전라도 크기인 2만798㎢(영국의 8%), 인구는 300만명(5%)에 불과하다. 그나마 산업혁명기 석탄 수출항이던 수도 카디프와 뉴포트 스완지에 3분의 2가 모여 산다. 주로 해발 200m 이상 고지대이지만 가장 높은 스노든산이 1085m로 속리산(1058m)과 비슷하다. 스노든산이 ‘눈의 언덕’이란 뜻일 만큼 눈이 많았지만 요즘은 눈 대신 비가 잦아 연간 강우량이 4500㎜에 이른다. 석기시대, 로마시대 유적과 화려하진 않아도 정갈한 해안과 산지를 두루 갖춰 관광지로는 그만이다.

웨일스는 맨유의 라이언 긱스가 그곳 출신이란 것 말고는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웨일스와 관련된 게 꽤 많다. 꽃·식물 문양의 명품 도자기 포트메리온(Portmerion)은 웨일스 포트메리온 빌리지에서 탄생했다. 고서와 중고서적 마을로 유명해진 헤이온와이는 웨일스의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앨리스 리델의 가족이 휴가 때마다 머문 해안 별장도 웨일스에 있다고 한다.

어제 새벽(한국시간) 카디프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 8강전 극적 승리를 계기로 웨일스가 한층 친숙하게 다가오게 됐다. 경기가 열린 밀레니엄스타디움은 1999년 당시엔 영국 최대인 7만4500석 규모로 지어졌다. 오는 8일 새벽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도 열대야를 날려줄 시원한 선전을 기대해 본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