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토리버치 신발에 구찌 로고가…'하이브리드 짝퉁 걸' 대굴욕ㅠㅠ
평소 명품에 관심없는 이모 대리는 얼마 전 신발 때문에 직장에서 곤욕을 치렀다. 길거리 보세 신발 가게에서 맘에 드는 구두를 발견해 덥석 샀는데, 알고 보니 명품 브랜드를 베낀 짝퉁이었다. 구두 윗부분에는 ‘토리버치’의 로고가 크게 박혀 있었지만 로고를 제외한 천 부분은 또 다른 명품 브랜드인 ‘구찌’의 로고가 수놓아진 ‘이중 짝퉁’이었던 것. “회사에서 하루 종일 ‘토리구찌’라는 놀림을 당했죠. ‘하이브리드 걸’이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얻게 됐어요. 명품이 도대체 뭔지~!”

직장 내에서 보이지 않는 ‘명품 신경전’을 벌이는 곳이 적지 않다. 짝퉁 탓에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가 하면 명품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명품에 얽힌 직장 내 에피소드를 모아 본다.

◆과도한 명품 집착, 남들에겐 ‘눈살’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명품남’ 김 대리는 직장 내에서 ‘은따’(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사람)다. 그의 아침은 자신의 옷, 가방, 시계 등이 어디 제품이며 얼마에 구매했는지에 대한 브리핑으로 시작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옷과 가방 등에도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품평을 늘어놓는다. 김 대리의 후배 전씨는 “동료들이 새로운 제품을 착용하고 오면 재킷은 물론 가방, 심지어는 셔츠나 넥타이까지 뒤집어 브랜드를 확인해요. 명품이면 ‘예쁘다’ ‘얼마주고 샀냐’ 등의 질문이 따라오지만 명품이 아니면 피식 웃으며 지나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불쾌하고 싫은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또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김 차장은 거래처 직원과 해외 출장을 갔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거래처 직원 이씨가 공식 일정이 끝난 마지막날 오후, 김 차장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외곽에 위치한 아울렛 방문 일정을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알고보니 이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명품 마니아였던 것. 김 차장은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가족들 선물도 살 겸 참았다. 하지만 각자 쇼핑을 마치고 만나기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도 이씨가 나타나지 않자 김 차장은 점점 화가 났다. “결국 온 아울렛을 돌아 명품 매장에서 신발을 몇 켤레씩 늘어놓은 채 신어보고 있는 이씨를 찾아냈죠. 순간 거래처와의 관계를 끊고 싶더라고요.”

◆명품 소비 지나치면 ‘쪽박’

거래처 직원들을 만날 때 일부러 명품 브랜드 소품으로 ‘무장’하고 나가는 직장인들도 있다. 센스와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어필하는 행동이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마케팅 기업의 김 차장도 대리 시절 쓰라린 추억을 잊지 못한다. 탁월한 언변으로 고객사 실무자를 설득한 뒤 담당 임원에게 인사를 가던 그는 세련되게 보이려고 집안에 있는 명품을 총동원했다. 아르마니 ‘은갈치 슈트’부터 페라가모 셔츠, 넥타이, 구두까지…. 하지만 그 임원의 눈에는 명품으로 휘감은 그의 모습이 오히려 눈꼴 사나웠다. 명함을 건넬 때 몽블랑 명함지갑이 나오고, 메모하기 위해 몽블랑 만년필을 꺼내자 이 임원은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김 차장은 명품 착용을 꺼린다고.

A 섬유회사 직원들 중 명품 좀 쓴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 과장 앞에서 얼씬거린다. 신 과장이 명품을 제대로 ‘알아봐 주는 사람’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로고가 크게 안 박힌 제품은 명품인지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신 과장이 한마디 해주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명품 족집게’인 신 과장이 갖고 있는 명품은 키홀더가 전부다. 지난해 명품 구입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에 투자했다 적금까지 다 날렸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착용한 명품을 보면 브랜드에 가격까지 다 알죠. 그러면 뭐합니까. 저는 있던 명품 다 처분하고 대출금 갚기 급급한 걸.”

◆명품과 짝퉁의 경계에서

명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명 ‘홍콩 명품’ ‘SA급(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운 짝퉁)’ 등으로 불리는 정교한 짝퉁을 구입하는 직장인들도 많아졌다. 겉모습만 보면 잘 구분이 가지 않지만 나름의 짝퉁 감별법이 있다고.

구두는 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한식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있는 사람은 발바닥 부분의 태그(상표)가 보이도록 당당하게 벗고 들어간다. 반면 짝퉁을 신은 사람은 신발을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긴다. “백이나 지갑은 갑자기 비오는 날 구분할 수 있어요. ‘짝퉁’을 든 사람은 백이나 지갑을 머리 위로 올려 비를 막지만 진품을 지닌 사람은 머리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온몸으로 그것을 감싸안고 ‘수호’하며 달린답니다.”

박 과장은 사내에서 ‘명품남’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로고가 안 박힌 제품이 없을 정도다. 사내 체육대회 때도 명품 브랜드의 티셔츠와 스니커즈를 차려입고 나와 여직원들로부터 ‘역시 명품남’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갓 입사한 새내기 김모 사원은 박 과장의 비밀을 알고 있다. 짝퉁 지갑을 사기 위해 웹서핑을 하던 중 홍콩SA급 명품 사이트에서 사이즈와 배송기간을 묻는 박 과장의 댓글을 발견한 것. 그 뒤로 박 과장이 멋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여사원들을 보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듯 진실을 토해내고 싶어진다고.

◆내 명품 어떻게 티 내지?

홍보업체에 다니는 정 과장은 은근슬쩍 명품을 티내는 노하우가 뛰어나다. 밥을 먹다 넥타이에 음식을 흘린 척한 뒤 ‘이런…안 묻었나’ 하며 일부러 상표가 보이도록 넥타이를 뒤집어 살펴 보는 식이다. 불평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자랑하는 것도 노하우로 꼽힌다. “지난번에 장모님이 사주신 300만원짜리 아르마니 슈트는 유럽식 체형에 맞춰 나와 내 몸엔 안 맞더라고….”

티내고 싶지 않은 명품도 있다. 하루는 사내에서 명품 좋아하기로 유명한 김 대리의 책상 위에 만년필이 하나 올려져 있었다. 역시나 비싼 명품 제품. 담당 본부장은 이를 보고 “이야, 김 대리 비싼 만년필 쓰네”라며 쓱 들어올렸다. 순간 뒤쪽에 선명하게 박힌 거래처 회사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허허, 거래처가 센스가 없네”라며 만년필을 책상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김 대리는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아무리 명품이라도 회사 이름이나 로고가 박혀 있으면 명품이 아닌 거예요.”

정소람/고경봉/윤정현/강영연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