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 한창 잘나갈 때 훌훌 털고 일어나 창업하는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46·사진)은 NHN을 떠나면서 직원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 김 의장은 자신(배)이 NHN(항구)을 떠나는 이유를 이 한마디로 설명했다.

김 의장의 여정은 늘 그랬다. 삼성SDS에서 유니텔을 키워 한창 잘나갈 때 뛰쳐나와 한게임을 창업했고, 한게임과 네이버 합병회사인 NHN에서 안주해도 될 만할 때 회사를 뛰쳐나와 카카오톡을 만들었다. 《어제를 버려라:진화하는 아이콘 김범수의 끝없는 도전》은 김 의장의 도전 여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김 의장이 벤처를 창업해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왜 도전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졌는지, 성공한 뒤에 왜 다시 도전하는지 등을 들려준다. 항구에 머무르지 않고 바다로 떠나는 김범수. 이 책은 김범수의 벤처 여정을 드라마처럼 보여줘 호머의 서사시 ‘오딧세이’ 축소판을 읽는 느낌을 준다.

김 의장의 도전은 서울대 재학 시절 후배 하숙집에서 PC통신을 접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PC통신의 매력에 빠져 3개월 남짓 후배 하숙집에 붙어살았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던 그의 진로는 여기서 바뀌었다. PC통신을 주제로 대학원 졸업논문을 썼고 삼성SDS에 입사해 PC통신 유니텔 개발팀에서 일했다.

유니텔은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항구에 머무르지 않았다. 1997년 ‘온라인에서 즐기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직장을 뛰쳐나와 온라인게임 회사를 차렸다. 창업자금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마련한 500만원이 전부였다. 더구나 외환위기 때였다. 그는 PC방 사업으로 초기 난관을 타개해 온라인게임 선도기업 한게임을 키워냈다.

그는 결정적 순간마다 승부사로 돌변했다. 창업 초기에 개발자금도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최대 PC방을 열어 돌파구를 마련했고, 한게임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네이버컴과 합병하는 결단을 내렸다. 합병비율이 불리하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네이버컴과 한게임을 합쳤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효과만 생각했다.

NHN 시절에는 일본 진출을 주도해 한게임재팬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2007년 마침내 도전을 접어야 했다. NHN을 떠난 뒤 안식년을 갖기도 했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항구를 떠나는 것은 말띠 김범수의 숙명인가. 지금은 카카오톡으로 글로벌 시장에 재도전하고 있다.

요즘 최대 화두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은 단기간에 50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인터넷전화 ‘보이스톡’ 서비스를 시작해 통신업계를 발칵 뒤엎어 놓았다. 유니텔에서 출발해 한게임과 NHN을 거쳐 카카오톡까지 달려온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인터넷 업계를 4년 이상 출입했다.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인터넷 업계 변천사와 NHN의 성장사, 김 의장의 인맥 등을 꿰뚫고 있어 앞뒤가 착착 들어맞기 때문이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