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온통 국가와 국민을 구하겠다는 목소리뿐이다. 소위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구호들이다. 여야 정당들이 제출한 법안은 벌써 400여개나 된다. 임시국회가 열렸으니 위장된 포퓰리즘 법안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질 것이다.

부동산분야도 예외일 리 없다. 민주당은 서민을 보호하겠다며 전·월세 상한제 도입 법안을 이미 제출했고, 새누리당 역시 비슷한 내용의 공약에 미련을 두고 있다. 199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법 개정으로 전세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났지만, 전셋값도 일시에 2년치 상승분이 반영되는 바람에 자금을 못 구한 서민들이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는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종합부동산세까지 도입했던 노무현 정부조차 임기 말인 2007년 임대주택의 임대차기간을 늘리거나 가격을 규제하는 것은 임대료 폭등을 야기한다고 경고했던 것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수도권은 아직도 집값 조정 중

부동산시장 침체가 워낙 심각한 터라 정치권에 뭔가 기대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집값은 많이 떨어진 것 같은데 거래가 끊겨 답답한 탓이다. 그렇지만 거래가 안 되는 것은 아직도 시장에서 가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봐야 한다. 팔려는 사람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고 보고 지금 가격을 원하지만 사려는 사람은 더 내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지방 간에 주택매매가격 등락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 114 조사에 따르면 서울과 신도시, 그 밖의 수도권 지역 모두 주택 매매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09년에만 반짝 올랐을 뿐 계속 하락세다. 올 상반기에도 서울은 2.26%, 수도권은 1.16% 내렸다. 반면 지방은 2007년부터 줄곧 상승세다. 지난해는 11%나 급등했다. 당초 집값 하락세는 지방에서 시작해 수도권으로 확산됐다. 전문가들이 지방과는 달리 아직 수도권은 가격조정이 끝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일각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풀면 부동산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지만 가격이 조정 중인 상황에서는 다 헛말이다.

가격관리 정책은 실패 반복

[한경포럼] 부동산 가격은 잊으시길…
그래서 가격을 목표로 하는 부동산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정부가 집값을 올리고 내릴 수 있다는 발상부터 잘못이다. 역대 정권마다 가격이 급등해도 대책을 내고, 급락해도 대책을 발표했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MB정부도 수도 없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마찬가지다. 다음 정부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다. 경제가 성장해야 집값도 오르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97년 신종합토지정책 추진요강을 발표했던 때부터 가격 대책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거품붕괴 이후 장기불황으로 부동산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는 것에 맞춰 부동산정책을 유효한 이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대신 거래의 투명성, 정보 확충, 세제 등 시장제도 정비에 치중했다. 우리가 한번 음미해봐야 할 대목이다.

표가 된다 싶으면 얼마든지 여론의 흐름에 맞춰 법안을 뚝딱 만들어 주겠다는 게 지금의 정치판이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부동산시장에도 손을 내밀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섣부른 개입이 더 위험하다. 시효를 상실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분양가상한제 같은 묵은 규제부터 푸는 게 훨씬 낫다. 도시를 파괴하려면 폭탄을 터뜨리지 않아도 임대료를 규제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공연히 건드렸다간 문제만 커지는 게 부동산이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