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 사는 무명 디자이너였던 스콧 윌슨은 애플 아이팟나노를 손목시계처럼 차고 다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제품 개발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 고민 끝에 인터넷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네티즌을 상대로 투자를 요청했다. 윌슨은 1만3000여명에게서 목표로 했던 금액(1만5000달러)보다 60배나 많은 94만달러를 투자받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다.

인터넷 등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 주목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신생 기업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한 ‘JOBS(Jump start Our Business Startup)법’에 서명했고, 한국도 비슷한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더욱 활성화돼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크라우드 펀딩은 목적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윌슨의 사례처럼 사업 아이디어만 있을 뿐 제품을 아직 만들지 못한 초기 단계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엔젤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엔젤투자는 전문 투자자의 영역이었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일반인들도 소액으로 신생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아직은 크라우드 펀딩에 관한 법 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투자 대가로 금전적인 수익보다는 현물을 주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되면 소자본 창업자들이 보다 쉽게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이 기업 투자자금 마련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소액대출 사업에도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할 수 있다. 우간다의 가난한 생선장수였던 엘리자베스 오말라는 생선을 구입할 돈이 부족해 온라인 소액대출을 제공하는 비정부기구(NGO) 키바(KIVA)에 도움을 요청했다. 인터넷으로 오말라의 사연을 접한 사람들이 그에게 500달러를 빌려줬다. 오말라는 빌린 돈으로 장사를 좀 더 크게 해 9개월 뒤 대출금을 모두 갚고 130달러를 저축했다.

금전적 이익보다는 공익적 활동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크라우드 펀딩도 있다. 공익후원형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해당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홍보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이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더라도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기 위해 비용의 일부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하기도 한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성공적으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투자자들과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액투자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크라우드 펀딩을 일컬어 ‘돈보다 사람을 모으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다.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단순히 자금을 제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조언자가 될 수 있다.

홍현민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hm.hong@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