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현 덕현법률사무소 상임고문 겸 국중자문사 대표(53)는 중국 베이징에서 ‘김 박사’로 통한다. 중국에 있는 한국인 박사는 많다. 하지만 김 대표만큼 박사 호칭을 오래 들은 사람은 없다. 이유는 중국 정부가 공인한 박사이기 때문이다. 중국 교육부는 ‘개혁개방 30년 교육사’에 김 대표를 외국인 1호 법학박사로 기록했다.

중국은 외국인들에게 법적용을 까다롭게 하기로 유명하다.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게 법률 수요가 많은 이유다. 그런 중국에서 법률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김 대표는 해결사로 알려져 있다. 현지 법률에 정통하고 중국 법조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중국은 법치국가여서 관시(關系)가 법을 초월할 수는 없다”며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 법률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사안인지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중국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1980년대 초 잠시 중국 붐이 불었다. 1983년 중국 민항기가 불시착을 하면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침을 꽂고 수술을 한다는 뉴스도 나와 신비의 나라로 인식되기도 했다. 멀리 내다보면 전망도 좋은 나라였다. 중국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대만으로 유학을 갔는데 국민당 정부가 유학생에게 많은 혜택을 줬다. 그래서 나도 1988년 대만대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유학생이 200명 정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한·중 수교가 이뤄진 후 중국어과 교수가 되거나 대기업에 특채로 입사했다. 수요가 폭발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일찍부터 법률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동기는.

“그때 중국법을 아는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숙사에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중국어로 된 계약서 내용을 잘 모르겠다고 상담을 해온 것이 대부분이다. 만나서 설명해주고 돈을 받기는 그렇고 해서 술을 얻어마시곤 했다. 그러다가 잘 아는 기업인이 권유해 친구들과 사무소를 열었다.”

▷중국은 외국인에게 변호사직을 개방하지 않고 있는데.

“변호사로 형사소송에는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소송 대리인으로 민사소송은 가능하다. 그래서 형사사건은 중국인 변호사에게 맡기고 민사소송에는 대리인으로 참석한다. 중국은 민사소송에서 누구나 재판에 참여해 말할 수 있는 변론 개방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변호사가 아니어도 관계가 없다.”

▷중국에서는 법보다 관시가 중요하다는데 실제는 어떤가 .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관시를 과장되게 바라보고 있다. 중국처럼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인치에 의존해서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은 지속적으로 법치를 강조해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에서 사업을 하며 관시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을 관시에 의존해서 해보겠다는 것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법률적으로 맞는지 아닌지 판단해보고 그 다음에 법 테두리 내에서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시를 동원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다. 중국의 관료들도 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안된다면 관시를 찾아야 한다. 관시가 법을 초월할 수는 없다. 한국의 사업가들이 중국에서 낭패를 당하는 것은 웬만한 건 다 관시로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중국은 서방과 달리 모든 기업이 정부에 줄을 대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중국이 미국처럼 제도화된 국가는 아니다. 위법이 아니라면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강력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게도 많은 중국인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친구들도 쉽게 관여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제도화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합법적 틀에서 관시가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한국 미국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중국법이 외국인에게 더 엄격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법상 국민대우 원칙이 있다. 모든 외국인도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도 이를 준수한다. 물론 법은 그 나라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을 더 우대하지는 않는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 전에 중국은 외국인과 내국인이 거쳐야 하는 절차가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법률적으로는 아니지만 실무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많다.”

▷보이지 않는 장벽의 사례를 든다면.

“예를 들어 외국 기업이 중국인에게 지분을 무상으로 양도할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외국인이 지분을 무상으로 받을 때는 상무국이 별다른 이유 없이 비준을 안해주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식당을 하는 많은 한국인들도 불합리한 기준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외국인은 모든 설비를 갖춘 후 위생허가증을 받고 그 다음 외식업을 신청할 수 있다. 외식업 허가증이 있어야 계좌를 개설해 돈을 갖고 들어올 수 있는데 외국인에게는 허가증을 가장 나중에 주는 것이다. 그래서 식당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몰래 돈을 갖고 들어와 설비를 살 수밖에 없다. 잘못된 법체계가 외국인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법률사업을 하면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법률콘서트처럼 오락과 지식이 결합된 퓨전행사를 열어보고 싶다. 사람들은 법률이 머리가 아프고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국법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TV에 나오는 토크쇼처럼 중국법을 재밌게 알리는 행사를 열면 즐겁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지금 시대의 키워드는 재미다. 재미가 없으면 모두 싫어한다. 세미나처럼 엄숙하게 하지 말고 가수 초청해 피아노치고 개그콘서트처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법률콘서트를 열면 즐거울 것 같다.”

▷중국 법률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이 길을 권하고 싶나.

“중국말에 ‘첸투광밍, 다오루칸커(前途光明, 道路坎)’라는 말이 있다. 앞길은 유망하지만 갈 길은 험난하다는 뜻이다. 중국은 멋진 시장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법률가로 많은 돈을 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가능하다. 한·중 간에 얼마나 많은 법률서비스가 필요하겠는가. 고생은 되겠지만 도전해볼 만하다고 본다. 그런데 법을 하려면 언어가 중요하다. 법정에서는 완곡한 어법을 많이 사용한다. 행간을 이해할 수 있어야 유능한 법률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중국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중국 법률시장을 두드려보길 바란다.”


◆ 김덕현 누구인가? 中서 법학박사 받은 첫 번째 외국인

1988년 대만대로 유학을 떠나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 중국어를 배웠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중국 정법대 박사과정에 첫 외국인 학생으로 입학했으며 중국 내 외국인 법학박사 1호를 기록했다. 1994년부터 투자컨설팅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3500여건의 투자상담을 했다.

중국어로 쓴 ‘당대사법체계’와 ‘21세기 중국법치회고’, 한국어로 쓴 ‘재미있는 중국법률 이야기’와 ‘중국비즈니스 실무법’, ‘사례로 풀어보는 중국법’ 등을 출간했다.

덕현법률사무소에는 상근 변호사 9명, 등록변호사 22명이 일하고 있다.


△1959년 부산 출생 △1992년 대만대 법학석사 △1996년 중국 정법대 법학박사 △1998년 중국 정법대 겸직교수 △2000년 한국상회 및 한국인회 법률상담위원 △2006년 서울사이버대 중국통상학과 외래교수 △2007년 주중대한민국대사관 법률상담위원 △2007년 베이징 국중자문유한공사 대표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