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달러, 우리돈 1000원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까. 세상에는 그 1000원도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최빈국 50개국의 평균 빈곤선은 1인당 하루 99센트. 세계 인구의 13%인 8억6500만명(2005년)이 그렇게 근근이 살고 있다. 가난이 가난을 부르는 ‘빈곤의 덫’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모습이다. 각국 정부의 지원과 해외 원조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해외 원조가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

미 MIT의 개발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미국의 ‘예비 노벨상’인 존 클라크 메달을 받은 경제학자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가 세계적 빈곤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원제:POOR ECONOMICS)》를 통해서다.

경제학자들은 세계적 가난의 해결 방법을 놓고 두 파로 갈린다. 한쪽은 가난의 덫을 끊을 수 있게끔 무조건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공급론’ 진영이다. “대대적인 초기투자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대표적인 공급론자다. 다른 한쪽은 원조는 시장 발전을 저해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수요론’ 진영이다. 윌리엄 이스털리 뉴욕대 교수가 원조를 불신하는 수요론 진영의 대표격이다. 그는 “원조는 피원조국 정부를 부패시킨다”며 “가난한 나라에 유리한 대안은 자유 시장 시스템을 도입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너지와 뒤플로 두 저자는 이런 논쟁에서 조금 비켜서 있다. 대신 왜 그 많은 정부 지원과 해외 원조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원조의 효과를 촉발시킬 실마리를 찾는 데 주력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와 생각, 그에 따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모르고 하는 원조 사업은 대규모 투기사업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 의약계에서 신약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작위 대조실험’을 현장 도입한 게 설득력을 보탠다.

식량원조의 효용성을 보자. 대부분의 식량원조 정책의 논리적 근거는 뻔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값싼 곡물을 되도록 많이 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의 양이 아니다”며 “대다수 식량 원조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단순한 곡물 지급량 증대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현장연구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더 생기면 음식의 양을 늘리기보다 질을 바꾸는 경향이 짙으며, 먹을 것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용도로 돈을 쓰고자 하는 유혹에도 흔들리게 된다는 것. 따라서 식량원조는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초점을 맞춰 영양제 공급에 주력하는 등의 방법을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말라리아 등 질병의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 모기장을 치고 자고, 예방접종을 받으며, 음용수를 염소 소독하는 등의 값싼 방법이 있는데도 이용하지 않는 까닭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예방접종 때문에 다른 나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아이가 예방접종을 통해 얻을 미래의 이익은 과소평가하는 반면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따른 당장의 손실은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인도 사람들이 예방보다 치료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저렴한 공중 의료시설보다 사립병원을 선호하는 것은 공중 의료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서란 해석도 내놓는다.

저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행동양태를 고려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콩과 스테인리스 쟁반을 주는 경제적 유인책으로 예방접종률을 끌어올린 실험 결과를 설명하며, “사람들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열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가난한 나라의 상황에 맞는 ‘넛지’(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를 적극 고안할 것을 주문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