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탁 트인 수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치솟고, 창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면 물길을 가르는 시원한 바닷소리가 스트레스를 싸~악 씻어낸다. 카지노, 미니골프, 수영, 스노클링, 호화쇼와 마술, 맛깔난 음식…. ‘바다 위의 리조트’ 크루즈가 이 모든 것을 싣고 바다를 달린다. 낭만과 추억을 태우고 저 망망대해로….

○버킷 리스트가 현실로…

설렘·기대·호기심을 함께 싣고 비행기는 수요일 오전 9시 조금 넘어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싱가포르. 크루즈여행을 위한 이륙이다. 6시간 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 크루즈터미널로 이동해 오후 4시 스타크루즈 ‘슈퍼스타 버고(Virgo)’호에 탑승했다. 살면서 꼭 한 번은 해야지 했던 ‘버킷 리스트’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코스는 2박짜리(크루즈 객실 기준). 배는 ‘미끄러지듯’ 바다를 달린다. 바다만 보이지 않으면 배 위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호화스럽다. 호텔과 리조트가 배 위에서 만났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스타크루즈의 간판급 크루즈선인 버고호는 7만6800t급으로 길이는 268m, 폭은 32m에 이른다. 935개의 객실에 최대 187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바다 위의 거대한 리조트’가 평균 24노트(시속 45㎞)로 거대한 물길을 가르지만 선내에선 이를 의식하는 여행객이 거의 없다.

○발코니에서 보는 석양 압권

크루즈선에서 보는 바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가 늦은 오후의 태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 새벽에 일어나 6시간이나 날아온 뒤라 약간은 피곤하지만 바닷물을 가르는 소리와 시원한 바람은 더없는 피로회복제다.

객실은 침실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발코니 선실’이다. 2인용 객실이어서 좀 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모든 시설이 만족스럽다. 고급스러운 침대, 보조 테이블, TV, 화장실과 분리된 샤워실, 미니 냉장고, 귀중품 보관 금고….

압권은 나만의 널따란 발코니다. 발코니 의자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면 내 자신이 순간 좀 우쭐해진다. 특별하달까, 아님 일상에서 제대로 탈출했구나 하는 해방감, 뭐 그런 기분이다. 내부 공간은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스타크루즈는 지난 1월 버고호를 전면 리모델링했다. 카펫을 교체하고 8층 객실을 모두 딜럭스룸으로 바꿨다.

객실은 고급 스위트, 발코니, 오션뷰, 인사이드 등 등급별로 다양하다. 야외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도서관, 쇼핑 아케이드, 미니 골프장, 스파, 뷰티살롱, 레스토랑, 비즈니스 회의실, 카지노 등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없을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는’ 바다 위의 리조트다.

버고호에서의 첫 식사는 7층 선미에 있는 중국식 레스토랑 ‘노블 하우스’에서 한마디로 ‘우아하게’ 먹었다. 맛도, 모양도 일품이다. 선택권이 제한된 크루즈 여행이라 음식은 어떨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벨라 비스타(정찬 레스토랑) 파빌리온(중국식) 메디테리언 뷔페 등 무료 레스토랑과 블루 라군(동남아 스타일) 필라조(이탈리아식) 사무라이(일식) 등 유료 레스토랑의 음식은 모두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스노클링으로 보는 경이로운 바닷속

크루즈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오후 8시. 버고호는 말레이시아 르당섬으로 출발하고 극장에서는 화려한 마술쇼가 시작된다. 각 나라 고유 의상을 입은 ‘미스 유니버스’들의 입담에 폭소가 터진다. ‘선상 파티’는 크루즈의 첫날밤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크루즈의 잠자리는 호텔 콘도와 별 차이가 없다. 간혹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지지만 이 또한 색다른 경험이다.

둘째날 하이라이트는 말레이시아 르당섬에서의 스노클링. 점심을 먹은 후 버고호에서 작은 배를 타고 도착한 르당섬 마린파크의 바닷속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배꼽이 잠길 정도로만 들어가도 비늘돔, 오징어, 새끼 상어, 그루퍼 등의 형형색색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산호의 아름다움은 백미다. 물이 얕고 안전해 가족 단위로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전날밤 여운 때문인지 버고호로 돌아오면서 은근히 둘째날 공연이 기다려진다. 메인 공연 격인 ‘Somewhere in time’은 서양과 동양을 오가는 스릴과 격조가 한껏 어우러진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성인쇼는 밤이 좀 더 깊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버고호 하선 후 싱가포르 시티투어는 일종의 ‘보너스’다. 국립식물원인 보타닉가든과 싱가포르 관광의 필수 코스인 머라이언공원을 둘러보고 오차드로드에서 쇼핑을 즐긴다. 싱가포르 시간으로 밤 12시께 창이공항을 출발하면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오전 7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크루즈 여행이 만들어준 ‘바다 위의 낭만’은 오래 추억 속에 남는다.

◆ 여행 팁
시푸드·스테이크…크루즈는 음식천국

싱가포르항공은 인천에서 싱가포르까지 직항편을 하루 3회 이상 운항한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직항편도 있다. 비행시간은 6시간 정도. 하나투어 모두투어 한진관광 등 여행사들은 2박3일 일정의 크루즈 상품을 판매 중이다. 가격은 1인당 150만원 정도(2인1실 인사이드 객실 기준)부터 객실별로 다양하다.

4~5월에도 30도가 넘을 정도로 덥기 때문에 가벼운 옷차림이 좋다. 크루즈선 내에선 승선(체크인)할 때 신분증과 현금, 신용카드 기능을 하는 카드키로 결제한다.

버고호의 음식은 대체로 입에 잘 맞는다. 김치와 라면 생각이 전혀 안 날 정도다. 비용 부담을 덜려면 무료 식당 3곳(양식 중식 뷔페)을 이용하면 된다. 양식의 메인 메뉴로는 양구이 새우요리 비프스테이크 훈제연어 파스타 등이 있는데 한 가지만 고르지 말고 양구이와 훈제연어, 새우요리와 비프스테이크 등을 짝지어 선택하면 된다. 회가 생각나면 일식 레스토랑 사무라이를 권한다. 시푸드와 비프스테이크도 일품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팔라조에선 고급 양식을 우아하게 즐길 수 있다.

싱가포르=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