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옷걸이ㆍ액자 글씨까지 '레드 범벅', 여기가 증권사인지 무당집인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빨간색 아니면 내 사무실에서 다 치워.”

점 집 얘기가 아니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박 상무는 넥타이부터 각 티슈케이스, 옷걸이 등 사무실의 모든 비품을 빨간색으로 통일한다.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눈앞에 빨간색만 보여야 일이 풀린다. 그 덕분인지 박 상무는 ‘깡촌’ 출신이지만, 입사 후 고속승진을 거듭하며 임원까지 올라 고향에서 ‘입신양명’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직원들의 마음은 다르다. 각 티슈케이스를 푸른색 계통으로 끼워둔 신입사원에게 케이스를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지른 적도 있었다. 한 직원은 “게시판 자석이나 좌우명 액자의 글씨까지 빨간색으로 하는데, 일과 중에는 무슨 무당집에 온 것 같다”며 “한번은 액자를 닦으려고 뒷면을 봤더니 붉은색 화살표(상한가표시)를 붙여놨더라”고 전했다.

하루하루 변수가 많은 직장생활. 업무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꼭 지켜야 할 또는, 반드시 피해야만 할 나만의 징크스가 있게 마련이다. 남들에게는 사소한 일로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하루, 한 달의 ‘일진’을 좌우하는 민감한 사항들이다. 친한 동료들에게도 쉽게 말하기 힘든 징크스들을 모아봤다.

○코디 징크스

직장인들의 징크스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에 얽힌 것들이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유 차장은 남자이면서도 옷 코디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그날 일을 할 수가 없다. 바쁜 아침 시간에 출근 준비를 서두르다 보면, 양말이나 셔츠, 넥타이, 상하의 옷 색깔 등이 밸런스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 차장은 그럴 때면 사람들이 자기만 쳐다 보는 것 같고, 그날 따라 공연히 상사에게 꾸지람도 더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코디가 찜찜하다고 여겨지면 출근하자마자 여자 동료에게 “이거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녀의 답변이 ‘X’로 나오면 즉시 가까운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의류코너로 달려간다. 양말을 다시 사 신는 것은 기본이요, 넥타이나 셔츠는 물론 심지어는 재킷에 맞춰 바지를 새로 사입은 적도 있다.

수입차 영업을 하는 정모 과장은 아침마다 신경을 곤두세워 넥타이를 맨다. 그에게는 처음 맨 넥타이의 길이에 따라 그날 하루가 좌우된다. “길게 매면 상사에게 혼날 일이 있고, 짧게 매면 고객과의 만남이 기대에 못 미치는 날이 많았어요. 적당한 길이로 바로 맬 수 있도록 바짝 신경을 씁니다.”

섬유회사 기획팀에서 일하는 최모 대리는 그날의 헤어스타일과 업무가 묘하게 연결되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마음에 꼭 들게 머리카락이 손질되면 그날의 일도 일사천리로 잘 풀리고 헤어스타일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업무가 꼬이면서 힘든 하루가 이어진다. 최 대리가 바쁜 아침이지만 드라이를 하고 왁스를 발라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하는 데 매일 30분 가까이 공을 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곱슬머리인 최 대리는 비가 오는 날 더 민감해진다. “여름 장마철에 맡은 프로젝트가 잘 성사된 일이 거의 없어요.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는 반드시 전주에 주간 날씨 일정을 체크하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대사를 앞두곤 밥도 술도 건너뛴다

은행 영업점에서 일하는 김모 과장은 고객과의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는 점심을 굶는 징크스가 있다. 그는 “미신일 수도 있지만 이번에 계약이 안 되면 ‘굶어죽는다’는 절박함으로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자기분석을 내놨다.

건설사에서 일하는 문모 차장은 팀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애주가지만, 월요일만큼은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 월요일부터 술을 마시면 일주일 내내 뜻하지 않은 술자리에 불려다니며 부대끼는 징크스가 있어서다. “술약속이 적어 아쉬운 마음에 월요일날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갑자기 이런 저런 ‘번개’가 생기더라고요. 사실 업무에는 지장이 많지만 술을 좋아하다보니 꼭 나쁜 징크스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하고요.”

○게임은 출근 전에 끝난다.

보험회사 영업직원인 강모 대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까지가 가장 중요하다. 핸드폰 알람이 아닌 다른 일로 아침에 잠을 깬다거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종일 제대로 일이 안 된다. 출근길 전철문에 끼이거나 남들과 부딪치는 일도 금물이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상담해야 할 일이 많은 보험영업의 특성상 마음을 제대로 잘 정리하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출근 전에 평상심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윤모 과장은 아침에 면도를 하면서 베이면 그날 힘든 술자리를 하게 된다는 징크스가 있다. 이번에 새로 옮긴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면도를 하다 피를 봐 무척 꺼림칙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술자리에서 인사불성이 돼 초장부터 스타일 구기고 말았습니다.”

○약속 징크스

A사 홍보팀은 회식을 꼭 해야 할 때면 아주 조용하고 은밀히 날짜를 잡는다. 팀원들도 회식장소를 어디로 할지 드러내놓고 얘기하기를 꺼린다. 회식에 대해 직원들끼리 미리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한 날이면 어김없이 돌발 상황이 생겨 회식이 취소되는 징크스가 있다. 이 팀의 불문율은 “오늘은 회식 잡았는데 조용하네?”라고 말하지 않는 것. 그렇게 말하면 꼭 일이 터질 것이란 걱정을 모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혼의 강모 사원은 평일날 소개팅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소개팅 약속만 잡으면 그날 회사에서 다른 일이 생겨서 약속을 미뤄야 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강 사원은 “보름 넘게 편안한 날이 이어지다가도 소개팅 날짜가 닥치면 생각지 않은 야근업무가 떨어지곤 한다”며 ”회사를 다니는 한 장가를 가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경목/윤성민/윤정현/강영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