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에서 獨 카셀까지…초여름 유럽은 미술과 사랑에 빠진다
매년 초여름이면 ‘현대미술 신도’들은 유럽으로 순례길에 오른다.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미술시장, 올해로 43회째 문을 여는 바젤 아트페어(ART Basel)를 보기 위해서다. 게다가 올해는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가 있는 해여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1970년 창설된 바젤 아트페어는 오는 6월13~17일 컨벤션산업의 도시 바젤의 메세 바젤(Messe Basel)에서 개막한다. 바젤은 인구 19만명에 불과한 중소도시다. 하지만 아트페어가 열리는 닷새 동안 전 세계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만 6만명을 넘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대가와 차세대 작가 작품 한자리에

스위스 바젤에서 獨 카셀까지…초여름 유럽은 미술과 사랑에 빠진다
경제위기에도 바젤 아트페어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작품들을 최고의 화상들이 공수해 잔치를 벌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환금성이 높은 작품들의 거래가 활발해지는데 미술시장의 생리를 잘 아는, 아니 생리를 만들어 나가는 대부분 대형 화랑들이 20세기 초반 미술사를 장식한 피카소, 에른스트, 미로, 무어, 자코메티, 콜더, 워홀 등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미술시장을 선도할 젊은 작가들도 빼놓지 않는다. 오늘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운이 좋은 관객들은 바젤 아트페어 현장에서 나오미 캠벨과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처럼 그림을 수집하는 유명인을 만날 수도 있다.

스위스 바젤에서 獨 카셀까지…초여름 유럽은 미술과 사랑에 빠진다

◆순수 예술 열정 넘치는 카셀 도큐멘타

미술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데는 순수 미술행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 그런 점에서 바젤에서 미술시장의 생생한 현장을 느꼈다면 독일 중부 헤센주의 카셀에서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로 달려가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순수 예술가들의 열정을 만나보자.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카셀 도큐멘타의 총감독은 캐롤린 크리스토프 바카기예프(55). 오는 6월9일부터 100일 동안 카셀의 프리데리치아눔을 비롯해 카를사우어 공원 일대, 글로리아극장에서 열린다.

이번 도큐멘타는 미술인들은 물론 인류·고고·미술사학자, 아티스트, 생물학자, 안무가, 비평가, 문화이론가, 큐레이터, 댄서, 경제학자, 편집자, 엔지니어를 비롯해 여성 영화 철학 정치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을 기획위원으로 선임해 미술의 경계를 넘어 사회와 인류에 어떻게 작용하고 반응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예정이어서 기대가 더욱 크다.

5년마다 ‘미래의 현대미술’을 제시한다는 카셀 도큐멘타는 2차대전 때 폭격으로 절반이나 파괴된 카셀에서 1955년 처음으로 열렸다. 카셀의 화가이자 미대 교수였던 아르놀트 보데가 몇몇 동료들과 창립한 ‘20세기 서양미술협회’에 의해 시작된 이 전시는 초기에는 민간 주도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나치 이후의 문화 독일 재건을 목적으로 삼았다.

1972년부터 연로한 보데를 대신해 처음으로 외부 인사로 도큐멘타의 디렉터를 맡은 사람은 스위스의 전설적인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1933~2005)이었다. 이때부터 총감독이 세운 강력한 예술 개념에 따라 전시가 이뤄졌다.

◆전쟁의 폐허 위에 피운 예술의 꽃

스위스 바젤에서 獨 카셀까지…초여름 유럽은 미술과 사랑에 빠진다
100일간 ‘헤라클레스의 도시’ 카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하면서도 순수한 사고를 자아내게 하는 현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카셀 도큐멘타의 저력과 뒷심은 부럽기만 하다. 작은 도시 카셀은 2차대전 당시 항공기와 전차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이 있었던 탓에 연합군의 엄청난 폭격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현대미술의 홍수로부터 잠시 벗어나 쉬고 싶다면 전차를 타고 빌헬름쇠헤 궁전과 그 정원을 찾아보면 좋다. 이 정원은 현대미술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독일의 구전동화를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엮어낸 그림 형제의 박물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도시 곳곳에서 지난 도큐멘타에 출품됐던 올덴버그나 곰리 등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 또한 낯선 도시에서 ‘발견의 기쁨’을 누리게 해준다.

정준모 <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