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슬며시 내려진 사법연수생 공지
사법연수생 자치회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지난주까지만해도 ‘공무원 6급 이하로는 절대로 지원하지 맙시다!!!’라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변호사를 6급 주무관(옛 주사)으로 채용하겠다는 공고를 낸 직후 자치회가 반발하며 올린 글이었다. 여기에는 “지원서를 제출한 사람이 있다면 철회하고, 주위에 낸 사람이 있다면 철회를 권유해달라” “권익위에 항의전화를 하자”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지침’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8일 자치회 홈페이지에서 관련 글이 사라졌다. “6급 이하로 채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특권의식”이라는 각계의 비판이 제기된 직후였다. 자치회 관계자는 “우리가 요구했던 사항이 언론에 충분히 보도돼 지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에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입법의견서 제출’과 같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다른 글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제목 외에 게시 내용을 볼 수 없는 이 홈페이지의 다른 게시판에는 여전히 6급 채용을 반대하는 자치회의 글이 올라와 있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자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게 슬그머니 글을 내린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삭제된 공지에는 “연수원장님의 승인을 받아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 등이 권익위를 항의 방문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사실이라면 연수원장이 공무원 신분인 사법연수생들의 집단행동을 허락했다는 얘기다. 연수원 공보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지만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자치회 관계자는 “특권의식으로 글을 올린 것이 아닌데 언론에서 중립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시 출신들이 행시 출신 밑에서 일할 수 있느냐”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사법연수생 6급 채용을 둘러싼 논란은 잦아들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연수원생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6급으로 채용된 변호사 3명 가운데 2명이 권익위 근무를 포기했다. 연수원생들의 반발이 특권의식인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권익위 근무 포기를 강제당하다시피 한 2명 변호사들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글은 삭제됐어도 이들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듯 싶다.

임도원 지식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