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리 식물에 애착 더 가는 이유 있었네
백난아의 ‘찔레꽃’은 거나하게 취한 남자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찔레꽃 붉게 피~는’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노래방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나오고는 한다. 그런데 찔레꽃은 정말 붉을까. 구성진 노랫가락을 망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정답은 ‘아니다’이다. 찔레나무에 피는 찔레꽃은 하얀색이다. 붉은빛이 감도는 개체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붉다고 표현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솟은땅 너른땅의 푸나무》는 찔레꽃처럼 우리 눈과 귀에 익은 식물에 관한 이야기 책이다. 유기억 강원대 교수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100가지 식물에 대한 느낌과 여러 단상들을 구수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식물의 특징과 쓰임새, 학명이나 어원과 이름에 얽힌 전설은 물론 자신과의 인연도 얘기해준다.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게 이 책의 덕목 중 하나다. 노래방 추억과 함께 ‘찔레꽃’ 노랫말을 떠올리고, 찔레나무와 꽃 이야기를 하는 식이어서 딱딱하지 않다. 찔레나무란 이름은 줄기에 가시가 있어 찔릴 수 있는 나무라는 데서 붙여졌을 거라는 얘기와 지방에서는 새비나무, 찔구나무, 야장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등 미처 몰랐던 것을 아는 즐거움도 있다.

청초한 금강초롱은 금강산에서 처음 채집된 초롱꽃 비슷한 식물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 학자가 1902년 금강산에서 처음 채집했으며, 1911년 새로운 속으로 명명됐다.

금강초롱에 얽힌 전설이 애달프다. 금강산 깊은 산골에 우애 좋은 남매가 살았다. 동생은 아픈 누이를 위해 달나라로 약초를 구하러 갔는데,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마중하러 나온 누이가 그만 길에서 죽고 말았다. 그 자리에 금강초롱이 피었는데, 누이가 들고 나온 초롱불이 꽃이 된 것이란 전설이다.

지리산 자락을 곧 노랗게 장식할 구례의 산수유와 비슷한 게 생강 냄새 진한 생강나무다. 저자는 생강나무 얘기를 하면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거론한다. 소설에서 노란 동백꽃으로 묘사한 꽃이 사실은 생강나무 꽃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남쪽 지방에서는 동백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썼던 것처럼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기름을 이용했으니 그렇게 착각할 만하다”고 설명한다.

김유정이 살던 춘천 실레마을에는 생강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 관광객들이 김유정의 동백꽃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안내도 잊지 않는다.

친절하게도 식물 종류별 분포도와 개화기, 결실기, 주요 형질 등을 도식화해 실었다. 각 식물의 모든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직접 찍은 600여장의 사진과 부인인 홍정윤 씨가 그린 꽃그림도 앉아서 꽃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