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수학교 출신…인생 좌우하는 건 가방끈 아닌 열정"
“저는 ‘가방끈’도 짧고, 지혜도 모자란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뛰어다녔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고, ‘맞다’ 싶으면 열정적으로 밀어붙였죠. 그게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제게 부지런함과 열정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동대문 상인으로 끝났을 겁니다.”

"나는 전수학교 출신…인생 좌우하는 건 가방끈 아닌 열정"
‘크로커다일 레이디’로 잘 알려진 패션그룹 형지의 최병오 회장(59). 그는 패션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배운 것 하나, 가진 것 하나 없었던 ‘고졸 출신의 1평(3.3㎡)짜리 옷가게 주인’이 의류업에 뛰어든 지 30년 만에 연매출 7000억원 규모의 패션 대기업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고단했던 젊은 시절과 사업 실패에 따른 좌절, 그리고 성공 비결에 대해 털어놓았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최고경영자 신춘 포럼’에서다.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리더십’이란 주제를 맡은 최 회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잘 먹고, 잘 살았죠.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세가 급속하게 기울기 시작합디다. 이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았죠. 결국 문교부가 아닌 체신부 인가 학교(부산고등기술학교)에 진학했어요. 대학에 진학하려면 고교졸업장을 따내기 위해 별도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전수학교(일종의 직업학교)’ 같은 비정규 고교에 들어간 거죠.”

최 회장은 강연 후 기자와 만나 “젊은 시절엔 ‘제대로 된 고등학교도 못 나왔다’는 게 부끄러워 학교 이름을 숨기기도 했었다”며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수성가했다는 증표 아닌가’란 생각이 들면서 자신있게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사업 인생’은 고교 졸업과 함께 시작됐다. 변변치 않은 학력 탓에 소위 ‘이름 있는 기업’엔 원서를 낼 생각조차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장사엔 소질이 있었다. 삼촌이 경영하던 페인트 대리점 점원을 거쳐 오락실, 빵집 등을 운영하며 자그마한 성공 체험을 쌓아나갔다.

동대문에 입성한 시점은 1982년. “돈을 벌려면 옷장사를 하라”는 손위 동서의 조언에 바다상가에 1평짜리 도매 매장을 냈다. 하지만 신설 상가였던 탓에 찾아오는 소매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새벽 4시께 출근해 점심 전까지 일을 마친 뒤 바지를 30~40개씩 어깨에 걸치고 전국 대형 공판장을 훑었다”며 “소매상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일반 도매상들과는 ‘다르게’ 장사했더니 길이 열리더라”고 말했다.

잘나가던 최 회장은 1993년 다시 ‘무일푼’ 신세가 됐다. 지인들에게 빌려준 돈이 ‘회수불능’ 상태가 되면서 그가 발행한 어음이 부도처리된 것. 161㎡(49평)짜리 아파트를 팔고 69㎡(21평) 월세로 옮겼다. 마흔살 최병오에게 남은 건 현금 4000만원과 ‘옷 만드는 재주’뿐이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맷집’을 기른 최 회장은 쉽게 주저앉지 않았다. 그 돈으로 ‘비버리힐스 폴로클럽’ 사업권을 따내 1년여 만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를 종잣돈으로 크로커다일 여성복 사업을 시작했다. 싱가포르 브랜드인 크로커다일은 당시 남성복만 있었는데, 이를 여성복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역발상’으로 본사를 설득, 라이선스를 따낸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크로커다일 레이디는 전국 500여개 점포에 연매출 3000억원 이상을 올리는 ‘국민 여성복’이 됐다. 샤트렌, 올리비아 하슬러 등 나머지 6개 브랜드를 합친 패션그룹 형지의 외형은 매장수 1400여개에 연매출 7000억원에 이른다.

최 회장은 “당시 명문대 출신 참모들은 ‘크로커다일 매장 수가 200개를 넘으면 실패한다’고 말렸지만 나는 ‘국민 여성복으로 만들려면 500개는 돼야 한다’며 밀어붙였다”며 “그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하지만 가장 깊이 고민했던 내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연 후 최 회장에게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학력 인플레’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많이 배우면 좋죠. 하지만 ‘이 정도면 됐다’ 싶으면 사회로 나가 부딪쳐야 합니다.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소위 ‘좋은 기업’에 들어가려고 취업을 미룬 채 스펙만 쌓거나 그저 ‘시간벌기’ 용도로 대학, 대학원 등 상급 학교에 가서야 되겠습니까. 인생의 성패는 학력이 아니라 열정과 부지런함에 달려 있습니다. 저를 보세요.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지만, 제가 월급 주는 대졸 직원이 500명이 넘습니다. 하하.”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