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왜 주저앉았나
곤도 데쓰지로 씨는 2008년 초까지 소니 최고의 엔지니어로 불렸다. 그는 소니의 영상기술을 개발하는 A3연구소를 이끌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DRC(Digital Reality Creation)기술을 개발해 소니가 TV시장을 장악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4월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유는 A3연구소가 해체되고 실체도 없는 프로젝트팀 부장으로 발령났기 때문이다. A3연구소 소속 엔지니어들도 모두 해고됐다. 곤도 씨는 “소니는 더 이상 기술 중심 회사가 아니다”며 29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났다.

소니 왜 주저앉았나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최신호(2월4일자)에서 “전설의 소니는 이제 없다”며 “앞으로도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굿바이 전설의 소니, 왜 애플이 되지 못했나’였다. 다이아몬드는 ‘기술의 소니’가 기술을 버려 성장동력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또 지나친 사업 다각화로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하워드 스트링어가 최고경영자(CEO)가 된 후 비전문가들이 득세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니는 2008년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한때 세계에서 도전자가 없던 TV 부문은 8년 연속 적자가 확실하다. 이런 부진은 ‘기술의 소니’에서 기술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1994년 ‘독립채산제’를 도입한 게 그 시발점이다.

독립채산제는 각 사업부가 별도의 독립회사처럼 운영되는 것이다. 사업부 간 경쟁 의식을 높이고 유연성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사업부들은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기술 공유를 꺼렸다. 자신들이 연구개발비를 투입한 기술에 대해서는 다른 부서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도 발생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독립채산제 때문에 소니는 애플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사업 부문 간 제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합 운영하는 컨트롤타워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자사 제품 간 잠식 현상도 소니의 딜레마로 작용했다. 다이아몬드는 “소니는 음악사업이 타격받을까 봐 음악 공유 시스템 구축을 꺼렸다”고 전했다.

CD와 레코드를 판매해 얻는 수익이 줄어들까 봐 애플의 아이튠즈 같은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사 제품 간 시장이 겹쳐 서로를 잠식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새로운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소니는 ‘혁신’보다는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했다는 게 다이아몬드의 평가다. 이는 기술자 해고로도 이어졌다. 스트링어 CEO는 2005년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엔지니어들을 해고했다. 연구소 규모를 줄이고 개발 비용도 줄였다. 이에 따라 회사를 떠나는 인재가 늘었다. 기술을 경시하는 회사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한국의 삼성, LG 등으로 소니의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국인 최초로 일본 기업 CEO에 오른 스트링어는 소니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취임한 그가 ‘외국인 부대’들을 감싸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스트링어는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취임 후 최근까지 소니의 시가총액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지난해 5월 해킹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니네트워크엔터테인먼트인터내셔널(SNEI) 회장인 팀 샤프는 회견 장소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정보시스템 담당인 조지 베이리 역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다이아몬드는 “스트링어는 대거 기용한 외국인 간부들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도 지나치게 많이 두고 있다. 이사 15명 가운데 13명이 사외이사다. 이들은 전문성이 떨어져 소니의 사업 전반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다이아몬드는 평가했다. 사외이사들 대부분은 해외에 있어 화상 회의에만 참석하는 수준이다.

무리하게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니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도 문제였다. 소니는 1989년 미국 컬럼비아픽처스엔터테인먼트를 사들이며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사들였다. 음악, 영화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대거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드웨어와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M&A에 거액의 자금만 써버리고 재무상황이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소니의 정체성마저 모호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전자, 영화, 금융에 이르기까지 손을 대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지만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소니는 1일 “히라이 가즈오 부사장을 새로운 CEO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히라이 CEO는 오는 4월1일 취임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