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정신 '존 레넌' VS 서정적 감성 '폴 매카트니'…전설의 비틀스 이끈 '불편한 콤비'
‘레넌-매카트니(Lennon-McCartney)’.

20세기를 풍미한 영국의 록밴드 비틀스의 앨범들에 쓰인 작곡, 작사자 표기다. 밴드의 양대 축이었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를 뜻한다. 비틀스 대부분의 곡은 공식적으로 레넌과 매카트니의 공동작업으로 발표됐다. ‘Yesterday’처럼 매카트니가 작사, 작곡부터 가창까지 도맡은 곡도 앨범 표지에는 ‘레넌-매카트니’라고 찍혀 있다. 아무리 홀로 만든 노래라도 비틀스라는 둥지 내에서 서로 영향을 받으며 나온 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카트니는 자신의 이름이 항상 레넌 다음에 표기되는 데 내심 불만을 가졌다. 그래서 비틀스 해체 이후인 1976년 자신이 만든 윙스라는 밴드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비틀스 노래를 모두 ‘매카트니-레넌’으로 바꿔버리기도 했다.

매카트니는 비틀스 시절을 담은 책《비틀스 앤솔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매카트니-레넌’을 원했지만 레넌은 성격이 강한 사람이었고 이미 매니저와 ‘레넌-매카트니’라고 하기로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저는 제 방식이 더 듣기 좋다고 말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음악적인 성향은 서로 달랐다. 레넌이 강하고 실험적이었다면 매카트니는 다정하고 감미로운 감성을 갖고 있었다. 각자 작곡한 노래들에서 이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Come together’ ‘In my life’ ‘Strawberry fields forever’ 등은 레넌, ‘Hey Jude’ ‘Let it be’ ‘I will’ 등은 매카트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불후의 명곡들은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생했다.

반항정신 '존 레넌' VS 서정적 감성 '폴 매카트니'…전설의 비틀스 이끈 '불편한 콤비'

◆지방축제의 의기투합

레넌은 매카트니보다 두 살이 많았다. 각각 17세, 15세였던 1957년 7월6일 영국 리버풀의 남쪽 교외지역인 울튼의 한 축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레넌은 쿼리멘이라는 밴드의 리더였다. 매카트니는 이날 레넌의 공연을 봤고 레넌도 매카트니가 직접 기타 반주로 노래한 에디 코크런의 ‘Twenty flight rock’을 들었다. 레넌은 매카트니의 뛰어난 실력에 단숨에 매료됐다. 연주도 좋았지만 노래를 너무 잘 불렀기 때문이다. 재즈악단 리더로 활동한 아버지를 둔 매카트니는 어렸을 적부터 트럼펫, 피아노 등을 익히며 역량을 쌓았다. 반면 레넌은 네 살 때 부모가 헤어지면서 이모와 함께 살았고 16세가 돼서야 기타를 잡을 수 있었다.

레넌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밴드에서 차지하고 있는 우월한 위치가 위협받더라도 매카트니를 끌어들일지, 아니면 밴드가 이름도 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었다. 레넌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음악 교육 수준은 매카트니가 저보다 나았어요. 게다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잘 생겨서 마음에 들었어요. 결국 강한 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힘을 모으기로 했죠.”

두 사람이 새로운 팀을 꾸린 뒤에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 드러머 링고 스타가 차례로 합류했다. 밴드 이름은 쿼리멘에서 ‘조니앤더문독스’ ‘롱존앤더비틀스’ ‘더실버비틀스’로 계속 바뀌다가 1960년 ‘더비틀스’로 확정됐다.

비틀스가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레넌과 매카트니는 일심동체였다. 대중음악 역사상 이들의 협업을 따라갈 밴드는 없었다. 그들은 특히 정서적 유대감이 강했다. 같은 지역 출신인 데다 두 사람 모두 10대에 어머니를 잃었다. 둘은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곡을 써내려갔다. 한 사람이 주요 선율을 만들면 다른 한 사람이 나머지 부분을 작곡하고 편곡하는 식이었다. 한 노래의 작곡, 작사를 나눠서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She’s a woman’은 매카트니가 작곡했지만 가사는 레넌이 썼다. ‘A hard day’s night’는 레넌이 만들었지만 높은 음이 많아서 매카트니가 불렀다.

그럼에도 경쟁의 끈은 팽팽했다. 서로 누가 A면 첫 번째 노래(당시 레코드판의 앞면인 A면에 들어간 노래가 타이틀 곡이었다)를 차지할 것인지, 히트송은 누가 낼 것인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상대방에 대한 질투심도 적지 않았다. 레넌은 매카트니가 작곡한 ‘Yesterday’가 아름답다고 격찬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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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넘기지 못한 최고의 밴드

1967년 비틀스의 균열이 시작됐다. 여덟 번째 정규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준비 과정에서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약물 복용으로 급사하면서였다. 그는 레넌과 매카트니의 관계를 조율하는 사람이었다. 비틀스를 관리할 적임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즈음 각 멤버들은 최고 인기를 누리며 자의식도 강해졌다. 음반사와의 계약만이 그들을 묶고 있었다.

무엇보다 비틀스 맴버들을 갈라놓은 것은 여자였다. 당시 레넌은 평생의 동지이자 반려자인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를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카트니도 사진가 린다 이스트먼과 사랑에 빠졌다. 레넌이 오노에 열중하는 동안 오노는 스튜디오에 자주 나타났고 심지어 음반 작업에 관여하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은 불만을 갖게 됐고 비틀스의 주도권은 매카트니가 잡게 됐다.

오노는 일본의 야스다그룹 창업자 집안 출신이었고 이스트먼은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둘 다 예술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두 여자의 미묘한 경쟁은 결혼식으로도 이어졌다. 매카트니와 이스트먼은 1969년 3월12일 비틀스 멤버 몰래 비밀 결혼식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정보가 새면서 수천명의 팬이 결혼식장에 몰렸다. 이에 뒤질세라 레넌도 3주 후에 모로코와 스페인 국경 사이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레넌과 매카트니의 갈등은 사업 영역에서 더욱 증폭됐다. 새로 설립한 비틀스만의 레코드사인 애플의 운영 책임자 자리를 놓고 매카트니는 자신의 장인인 리 이스트먼이 적격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레넌은 롤링스톤스의 매니저를 맡았던 앨런 클라인을 추천했다. 일단 둘 모두에게 재정 고문을 맡기는 형태로 갈등은 봉합됐지만 비틀스의 협업체제는 끝장이 났다.

공동작업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1968년에 발매한 ‘The beatles’에는 ‘Panny lane’ ‘Ob-La-Di, Ob-La-Da’ ‘Back in the U.S.S.R’ 등 명곡이 즐비했지만 멤버들의 솔로 곡 모음집에 가까웠다. 매카트니는 1970년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 발매를 앞두고 그해 4월10일 언론에 비틀스의 공식 해체를 발표했다. 레넌은 크게 분개했다. 비틀스는 자신이 만든 밴드이기 때문에 해체도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암살로 마무리된 경쟁

비틀스 해체 이후 두 사람은 철천지 원수가 됐다. 홀로 활동하게 된 이들은 각종 인터뷰에서 서로를 헐뜯기에 바빴다. 레넌은 “매카트니는 사랑 타령에만 재주가 있다” “사회 참여적이지 않다”고 독설을 내뱉었다. 매카트니도 “레넌은 교활한 돼지였다” “그의 음악은 만족을 주지 못했다” 며 쏘아붙였다. 매카트니는 두 번째 솔로 앨범인 ‘RAM’의 표지에 양의 뿔을 손으로 잡는 모습을 담았는데 이 양은 레넌을 의미했다. 레넌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앨범 ‘Imagine’에 수록된 카드에 돼지의 귀를 당기는 모습을 담았다. 또한 이 음반에 수록된 ‘How do you sleep’에서 “예쁘장한 얼굴은 1, 2년이나 가겠지, 네가 한 것은 Yesterday뿐”이라며 매카트니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지리하게 이어질 것 같던 상호 비난은 1980년 12월8일 울려퍼진 다섯 발의 총성과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이날 녹음을 마치고 자택인 미국 뉴욕의 다코다 아파트로 향하던 레넌이 비틀스의 광팬인 마크 채프먼으로부터 총격을 당한 것. 평생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레넌의 죽음 앞에서 매카트니는 더 이상 그를 비난할 수가 없었다. 그는 1982년 레넌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Here today’를 발표했다. 레넌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담아 비틀스의 팬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만약 내가 당신을 잘 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요/만약 당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내가 아는 당신은 아마도 웃으며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말하겠죠/그렇지만 나는 예전에 어땠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