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전까지 '구글 심장'…스마트 핵심기술  '종속' 우려
2015년 어느 늦은 밤, 회사원 A씨가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간다. 현관문을 열고 손을 치켜들자 거실 전등이 밝게 켜진다. 천장에 달린 CCTV가 A씨의 동작을 인식한 뒤 홈 네트워크 관리 컴퓨터에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오늘 증시 시황을 보여줘”라고 말하자 TV가 저절로 켜지고 경제 정보 애플리케이션에 종목별·업종별 시세와 거래량이 나타난다. 책장에 올려져 있는 CD에 손을 대자 클라우드 기반의 온라인 음원 서비스를 통해 해당 음악이 저절로 재생된다. 깜빡하고 차의 시동을 켜놓았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끄는 버튼을 누른다.

◆‘안드로이드@홈’의 야심

모두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국내 대표기업 브랜드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들 기기를 뜯어보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탑재돼 있다. A씨는 안드로이드 때문에 적잖게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의 새로운 OS에 대해 로열티를 요구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면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격이 몇달째 출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문이 날 때마다 구글은 시인도,부인도 않으며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구글이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몰라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나 관련 기업들은 독자 OS 체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오랫동안 안드로이드에 길들여진 기업이나 소비자들은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시나리오는 공상과학(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로 간주됐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에 이어 모든 전자제품의 허브 역할을 하는 스마트TV의 OS마저 구글의 점령이 현실화되면서 ‘안드로이드 천하’는 착착 실행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실제 지난해 5월 새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래리 페이지는 ‘안드로이드@홈’이라는 신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집안의 모든 전자제품에 안드로이드 OS를 심겠다는 계획이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도 지난달 초 한 콘퍼런스에서 “내년에는 스마트TV 가운데 절반은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속 가능성 경계해야

구글의 목표는 간단 명료하다. 인터넷 검색,이메일,오피스 소프트웨어,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앞세워 전 세계 소비자들을 구글의 깃발 아래 묶는 것이다.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광고 수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2007년 공개한 안드로이드 OS를 제조사들에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전략에 따른 것이다. 안드로이드에 자사의 UI·웹브라우저·이메일·메시지 등 각종 ‘표준’ 프로그램들을 탑재한 뒤 단계적으로 점유율을 늘려가면 글로벌 시장의 저변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구글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컴퓨터화(computerization)’가 가속화되고 있는 전자·IT 산업의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 배경은 컴퓨터 분야에서 갖고 있는 확고한 경쟁력이다. 앞으로 모든 스마트 제품에는 중앙처리장치(CPU)가 탑재된다. 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OS가 필요하다. 각각의 기기들은 하나의 컴퓨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경쟁력이 중요해진다. 구글의 전략은 자사의 독보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뛰어난 범용 OS를 만들고 이를 하드웨어 제조 능력만 갖춘 업체들에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조업체,특히 한국기업처럼 하드웨어 능력이 뛰어난 업체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놓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당장은 안드로이드 OS를 활용해 시장을 개척·확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스마트·모바일 시대의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은 “구글이 OS를 내놓을 때마다 중국 업체들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발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며 “구글의 주도권을 꺾기 힘들다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의 종속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드로이드 OS가 사실상 국내 업체들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분석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다.

이승우/조귀동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