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아빠하고 같은 회사 다녀 좋기도 하지만 동료들의 아버지 뒷담화 듣고 있노라면…
제약회사에 다니는 이모 대리(33)는 최근 보고서 숫자를 잘못 썼다가 회의실로 불려가 부장에게 '신나게' 깨졌다. 하필이면 그때 같은 회사 연구직에 근무하는 아내가 회의실 앞을 지나갔다. 아내는 일부러 눈을 피하고 못 본 척했다. 그날 늦게 퇴근한 이 대리는 아내 얼굴 보기가 민망해 술에 취한 척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도 한동안 어색해지죠.누가 뭐라 말을 먼저 꺼내기도 그렇고….와이프 얼굴을 똑바로 안 보게 돼요. "

'패밀리가 떴다(?)' 가족들 간에 같은 회사에서 동료나 선후배로 다시 만난다면,좋은 점이 많을까 나쁜 점이 더 많을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귀를 막아도 들려 오는 이야기들은 되레 화를 낳기도 한다. 집은 물론 회사에서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패밀리 콜리그(family colleague)'들의 애환을 살펴본다.

◆비밀은 없다

부부가 회사 동료가 되면 가장 큰 장점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출퇴근을 같이하니 고유가 시대 기름값도 절약된다.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정보기술(IT)업체에서 아내와 함께 근무하는 손 모 과장(36)의 패밀리 콜리그 예찬론."생활 패턴이 같아 함께 움직일 수 있어 좋죠.무엇보다 야근이나 외근 일정을 이해해주고 상사와의 문제를 털어 놓을 땐 위로도 받고,업무로 대화를 나누다가 새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

그러나 집과 회사에서 겹치는 행동반경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단점은 '꼼수'의 틈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내 수당 등으로 챙기는 '비자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회식 자리를 피할 때 둘러대는 핑계도 앞뒤 잘 재서 해야 한다. 한 중견기업의 영업부에서 일하는 박모 대리(34)의 사연."주말 근무 차출에 친척 결혼식이라 못 간다고 했는데 다음날 마케팅부에서 일하는 아내와 우연히 마주친 부장님이 '결혼식엔 잘 다녀왔냐'고 물을 땐 진땀이 나데요. "

식품 회사에 근무하는 이 대리와 오 대리 부부는 살얼음판을 걷는 케이스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 끝에 동갑내기 사내 커플이 됐다. 남편 오 대리의 가장 친한 회사 동료 강 대리는 남의 말 전하기와 풍문수집이 특기로 별명도 '촉새'다. 강 대리는 이들 커플의 관계를 알기 전,오 대리와 나이트에서 부킹한 얘기,해수욕장에서 헌팅한 얘기,유흥주점 방문기 등을 여러 사람 앞에서 적나라하게 얘기하곤 했다. 물론 그들 틈에는 이 대리도 끼어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당황한 사람도 강 대리였다. 문제는 이들이 부부싸움을 하거나 관계가 안 좋을 때마다 화살이 강 대리에게 날아온다는 것이다. "새 신랑 오 대리는 '네가 뻘소리 하는 바람에 마누라가 맨날 트집 잡는다'며 저만 보면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죠.새 색시 이 대리는 요즘도 '남편의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협박하고요. 이 대리가 빨리 아기를 가져 출산 휴가라도 가야 덜 볶일 텐데요. "

◆적과의 동침

가족이 경쟁사에서 '적군'으로,또는 협력사에서 '갑을(甲乙)'관계로 지내는 경우도 있다. 결혼 10년 차인 최모 차장(42)은 은행원 부부다. 입행 때부터 같은 곳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몇 년 전 아내가 규모가 더 큰 은행으로 스카우트돼 가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내는 더 좋은 연봉을 제안받은 데다 최 차장보다 빠른 승진도 예정돼 있다. 최 차장이 털어놓는 속마음."아내가 부쩍 더 바빠졌을 뿐만 아니라 요즘은 회사 내에서 괜히 나를 애처롭게 보는 것 같은 자격지심도 듭니다. 집 사람이 근무하는 곳이 실적도 좋은 데다 업무 영역도 겹쳐 회사에서 꼬투리를 잡힐까봐 예전과 달리 일 얘기도 편하게 못해요. " 최 차장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줄어들고 집에서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자주 싸우게 된다고 했다.

협력사에서 일하는 형을 둔 동생의 마음도 편하지 않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장 모 대리(33)의 형은 전자부품 협력사의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장 대리가 입사하기 직전부터 협력사 관계였고 장 대리는 관련 부서도 아니지만 협력사 선정 기간이 다가오면 괜히 부담스럽다. 장 대리의 불편한 심정."형이 대놓고 얘기는 안 하지만 계약 기간이 다가오면 회사의 내부 분위기나 경쟁사 정보도 주길 바랄 텐데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형이지만 가능하면 회사 얘긴 안 하려고 화제를 자꾸 돌리게 됩니다. "

◆부녀지간에 금 갈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부녀가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홍모씨(30)는 아버지와 함께 정부부처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든든하지만,같은 부처에서 일하다 보니 소문이나 평판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일을 배우느라 잘 몰랐는데,경력이 쌓일수록 부담도 늘어난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 집 딸이…'라며 아버지에게 얘기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다보니 스트레스가 돼요. 또 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사회 생활에서 아버지의 평판을 직접 듣는 것도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니에요. " 홍씨 아버지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저도 저대로 왜 스트레스를 안 받겠어요. 요즘엔 만나는 사람마다 '왜 딸 시집을 안 보내냐'고 한마디씩 할 때면 솔직히 속상해요. "

중공업 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27)는 작은아버지와 한 회사에 다닌다. 이씨는 재무부서에서 일하지만 기획실장인 작은아버지 덕분에 회사가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월급을 맡기고 용돈을 타 쓰는 이씨는 한창 돈 문제에 민감한 나이.특별보너스가 나올 때면 명품을 살 수 있는 기회이건만 그때마다 작은아버지가 집에 선물을 사오고,이씨에 대한 어머니의 압박도 시작된다. 이씨의 푸념."올해 초엔 집에 온 작은아버지와 일부 상여금은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자고 제안했다가 그 모습을 어머니께 들키고 말았어요. 어머니는 그 후엔 쇼핑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오면 '상여금 받은 거 있지'라며 수시로 '취조'하는 분위기 입니다. "

윤정현/윤성민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