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만 빠진 자필 유언장은 효력이 있을까.

맹모씨는 부친이 사망한 뒤 상속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자 부친이 남긴 자필 유언장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고인은 유언장에 자필로 날짜와 이름을 쓰고 날인까지 했는데 주소만 기입하지 않았다. 민법 1066조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주소,성명을 자필로 쓰고 날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맹씨는 소송에서 패소했고 "민법조항이 헌법상 유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2일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1차적으로 자필로 쓴 이름이 인적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동명이인인 경우 주소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법률 조항은 전문,성명에다 주소까지 자필로 쓸것을 요구함으로써 유언자에게 더욱 신중하고 정확하게 유언 의사를 표시하게 하려는 뜻도 있다"고 밝혔다.

유언장의 효력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유언자가 죽고 나면 유언의 내용이 진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데다 관련된 금액이 거액인 경우가 많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2003년 11월 우리은행의 한 대여금고에서 유언장이 발견됐다. '예금 123억원을 연세대에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황해도 출신 사회사업가로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김모씨가 자필로 작성하고 이름까지 썼는데 마지막 날인만 생략됐다. 2년 반 동안 진행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날인 없는 유언장은 무효"라며 최종적으로 유족 측 손을 들어주었고,헌재도 관련 조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만성골수성 백혈병 등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구수(口授)증서 방식으로 '후처에게 회사 3개와 토지 건물 선산 예금 등 전 재산을 물려준다'고 유언했지만 이 역시 2006년 3월 대법원이 효력을 부인했다. 고인은 유언의 취지 확인을 구하는 변호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 '어'라고만 말했기 때문이다.

상속 · 유언 전문인 김응우 변호사는 "날인 관련 다툼도 잦고,자필증서 방식 이외는 모두 증인이 필요한데 증인 관련 요건도 불비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증인 앞에서 작성하는 공정증서 방식이 가장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