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원료인 소맥 현물가격이 선물보다 41% 이상 비싸게 거래되는 이례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현물가격은 제분업체들이 미국 등 산지에서 직접 구입하는 가격으로 현물 수급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는 반면,선물가격은 펀드 자금의 움직임에 좌우된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소맥 주산지인 미국과 호주의 재배지역에 폭우와 가뭄이 이어져 식용 소맥 물량이 줄어든 데다 호주달러 강세로 호주 소맥농가들이 환율 하락분을 수출가격에 전가하면서 현 · 선물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 상반기 적자예산을 짰던 국내 제분업체들에는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14일 국내 제분업계에 따르면 소맥 선물가격은 시카고상품거래소 3개월물 기준으로 올 1월 평균 t당 295달러에서 지난달 287달러로 소폭 하락했다. 작년 5월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지난 2월에는 306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유럽 재정위기,미국 경제 둔화,중국 긴축 정책 등으로 글로벌 투자자금이 원자재 시장에서 일부 이탈한 것이 선물가격 조정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현물가격 강세는 계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t당 361달러였던 국내 제분업계의 평균 구매가격은 지난달 406달러로 올 들어 12.5% 뛰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97.1%에 달한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5월 17.0%였던 현물과 선물가격의 격차도 지난달에는 41.5%로 벌어졌다.

횡보하고 있는 소맥 선물가격과 달리 현물가격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최대 밀 수출국인 미국의 소맥 품질이 떨어져 식용 물량이 감소한 탓이다. 제분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소맥을 재배하는데 지난해 하반기 폭우로 소맥의 단백질 함량이 크게 떨어졌다"며 "이로 인해 품질 편차가 커지고 빵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고급 소맥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6~7개에 달했던 미국 내 소맥 수출업체들이 최근엔 2~3개로 줄어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형성된 것도 현물가격 강세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아 제빵용으로 사용하는 미국 강력맥은 작년 5월 t당 255달러(미국소맥협회 기준)에서 지난달 505달러로 급등했다.

밀 수출국인 호주에서도 서부지역 가뭄으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 소맥 현물 수급을 꼬이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호주소맥위원회가 독점해온 소맥 수출이 2008년 일반 업체에 개방되면서 수출업체 간 물량 확보 경쟁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호주 소맥농가들이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호주달러의 환율 손실분을 수출가격에 전가하고 있는 것도 가격 상승 배경이란 설명이다. 이 영향으로 1년 전 t당 185달러였던 호주 소맥 현물가는 지난달 399달러로 2배 넘게 뛰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현물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동아원 관계자는 "호주에서는 9월에 새로 나올 소맥의 작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호주와 미국의 수출 농가들이 선물가격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를 감안할 때 단기간에 현물가격이 꺾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분업체들은 미국산과 호주산을 각각 45~50%,캐나다산을 5%가량 수입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