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생명 현상의 조절 메커니즘으로 '펩타이드 간섭' 현상을 새롭게 발견했다.

박충모 서울대 화학부 교수팀은 식물 전사인자(유전자 전사조절 단백질) 중 하나인 'IDD14' 의 변형 단백질이 IDD14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연구성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5월호에 실렸다.

생명 현상의 조절 메커니즘으로 기존에 잘 알려진 것은 'RNA 간섭'이다. '마이크로RNA'가 타깃 유전자 RNA에 달라붙어 해당 유전자 발현을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식물의 특정 마이크로RNA는 개화와 관련된 RNA에 달라붙어 개화 시기를 빠르게 하거나 늦춘다.

연구진이 새로 발견한 현상은 'RNA 간섭'과 개념적으로 비슷하지만, 단백질 수준에서 생명현상을 조절한다는 점이 다르다. 연구진은 이런 점에서 '펩타이드 간섭'이라고 이름붙였다. 연구진은 애기장대(동물실험에서 쥐와 같은 역할)를 이용한 일련의 연구를 진행한 결과, IDD14 전사인자 유전자가 특이한 형태로 작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IDD14가 보통 온도에서는 IDD14-α 단백질을 합성해 당 대사를 조절하지만, 저온에서는 IDD14-β라는 단백질을 합성하고 이것이 IDD14-α의 기능을 방해함으로써 당 대사를 억제하고 저온 저항성을 높인다는 점을 새로 밝혀냈다. 스스로 기능을 조절하는 '자가조절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연구성과는 유전자 조작 연구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는 "펩타이드 간섭 원리를 이용하면 유전자의 기능을 단백질 수준에서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식물 유전자조작 연구에 광범위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펩타이드 간섭 원리를 작물 유전자조작 기술로 특허출원하기 위해 벼 등을 대상으로 보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펩타이드 간섭을 통해 '생체시계'가 망가진 작물을 개발 중이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저온 및 병충해 저항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작물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RNA

DNA의 전사(복사)체.RNA에 아미노산이 달라붙어 특정한 과정을 거치면 생명체의 기본인 단백질이 된다. DNA를 구성하는 염기는 A(아데닌)-G(구아닌)-C(시토신)-T(티민)등 네 가지가 있는데 RNA는 티민(T)대신 우라실(U)이라는 염기가 들어간다. RNA는 기능과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