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때 제 아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을 보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해당 업체를 고소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

지난달 29일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시간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는 11월부터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청소년은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다. 게임업계는 개별 게임에 미치는 영향과 별도로 '게임은 유해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44)은 사회 전반의 이 같은 분위기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게임이라는 업(業)의 특성이 그래요. 학부모들의 공적이죠.저에 대해서 좋게 써주시면 (해당 언론사도) 엄청 욕을 먹을 수 있어요. "

하지만 김 사장은 바로 그런 이유로 "게임에 대한 비판들을 항상 경청하고 있으며,정말 좋은 게임을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경남 창원시를 연고로 창단되는 프로야구단의 구단주,자수성가로 1조원대 자산을 일궈낸 벤처 신화 등 그의 앞에는 항상 화려한 수식어들이 붙는다. 하지만 김 대표는 스스로를 "산꼭대기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속성상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들을 내놔야 하고 한 번 삐끗하면 몇 년간 번 돈을 모두 날려버리기 때문에 항상 피를 말리는 느낌이 든다는 설명이다.

▼셧다운제 시행으로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봅니까.

"저희 회사가 크고 알려져 있다 보니까 게임 문제가 나오면 엔씨소프트를 많이 지목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희 게임들의 주 이용자 층은 청소년이 아닌 20~30대죠."

▼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중독'이 아니라 '과몰입'입니다. 약물 중독하고는 다르죠.우리가 중독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다 보니 게임에도 붙이는 것 같아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유해하다고 해서 나름대로 조사를 해본 적이 있는데 범죄행위와 게임과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연결지을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관련 소송이 많고 판례들도 있지만 조사 결과를 보면 게임에서 비롯된 범죄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다 건강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할 생각이에요. 음식으로 치면 맛이 있으면서도 몸에 좋은…."

▼엔씨소프트의 밑거름이 된 리니지의 성공을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까.

"사실 리니지의 상용화는 계획적으로 된 것은 아니였어요. 당시 집안 사정으로 목돈이 필요했죠.은행을 쫓아다니면서 돈을 빌리려고 했는데 게임사업을 한다고 하니까 잘 안됐어요. 집을 팔아 작은 곳으로 옮기고 옮긴 집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렸죠.하지만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돈으로는 부족했고 상용화하기 위해 필요한 서버밖에 사지 못하는 금액이었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자'고 생각하고 상용화를 시작했죠.첫날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어요. 1주일 뒤에는 살았다고 생각했고 한 달 뒤에는 '역사를 쓸 수 있겠다' 싶었죠."

▼많은 인원이 게임 개발에 투입되고 갑론을박도 심할 것 같은데,최종 결정은 어떻게 내리는지 궁금합니다.

"체력 좋은 사람이 이겨요. (웃음)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체력 덕분이라고 종종 말합니다. 전 그렇게 똑똑하지 않지만 체력은 자신이 있어요. 회의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다면 디시전 메이커(decision maker)가 될 수 있습니다. "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요.

"스트레스는 풀면 안 됩니다. 안고 가야 해요. 그런 이야기가 있죠.9회 말 투아웃까지 갔는데 만루 상황에서 투수는 긴장하게 마련이에요. 감독이 타임을 불러 마운드에 올라가서 '긴장 풀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하면 반드시 지고, 도리어 심호흡을 함께 해주면 이긴다고 합니다. 긴장이 필요한 순간에는 긴장을 해야 해요. "

▼이만하면 만족스럽지 않습니까.

"저는 일하는 데서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감은 과정에 있지,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투수가 마운드에 섰을 때 지금 이 순간 어떤 공을 덜질까를 고민해야지,오늘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회사도 연초에 어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자고 하지만 결국 과정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게임을 개발할 때도 '이걸로 돈을 얼마 벌 거야' 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합니다. 보통 실패하는 사람들은 결과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욕심만 내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

▼앞으로 게임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요.

"모바일,3D,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심으로 세상이 변할 겁니다. 상상하지도 못하는 세계가 열릴 거예요. 요즘 제가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3D 영상을 보여 주고 있어요. 영상이 흑백에서 풀HD로 가는 것보다 풀HD에서 3D로 변한 것의 차이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3D는 감각적인 만족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리얼리티(reality)에 다가서는 거죠.3D로 수중 장면을 보면 진짜 물 속에 있는 느낌을 받게 되죠.자극하고는 다릅니다. 더 자연스러운 경험을 하는 것이죠.현재 3D로 게임 작업을 하긴 하지만 실제 컴퓨터 화면에서는 압착돼 많은 데이터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날리게 됩니다. 그런데 3D로 보니깐 그 데이터들이 전부 보이더라고요. 3D 게임을 제대로 만들려면 엄청난 돈이 듭니다. 지금 게임 제작비가 600억~700억원 정도 드는데 3D로 가면 두세 배로 뛰죠.1000억원은 넘고 2000억원까지 써야 게임을 만드는 세상이 올 겁니다. 게임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거죠.우리가 세상을 보듯이 게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

▼모바일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습니까.

"이제 모바일 컴퓨팅 시대입니다. 대형 컴퓨터,개인 컴퓨터 시대에 이어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죠.저도 모바일 게임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태블릿PC 등의 사양이 낮아 엔씨소프트 게임을 이용할 수 없어요. 하지만 소니가 올해 플레이스테이션2급인 넥스트제너레이션포터블(NGP)을 내놓을 예정이고, 아이패드4의 사양은 플레이스테이션3과 엑스박스360보다 좋을 겁니다. 그때는 저희 게임이 돌아갈 수 있어요,3년 뒤에는 엔씨소프트 게임도 모바일 시장에 뛰어든다는 얘기죠."

▼회사 시가총액이 6조원을 넘나드는데,거부가 된 느낌이 어떻습니까.

"사실 이렇게 큰 부자가 될 줄 생각도 못했어요. 그리고 실감도 못해요. 신문에 시가총액 기사가 나면 그저 숫자만 보여요. 저하고는 상관없다는 느낌이에요. 현재 목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숫자는 그냥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현대전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월급쟁이로 산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저는 현대전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학생 과외도 했어요. 그래야 아이 분유와 쌀을 살 수 있었죠.날짜가 돼서 과외비를 받아야 하는데 어쩌다 학생 부모님이 깜빡하는 날이면 걱정도 많이 했어요. 회사 차리고 나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요즘에도 어렸을 적 살았던 서울 신당동 근처를 가끔 찾아가서 떡볶이를 사먹습니다. 점심은 대부분 직원들과 같이하고요. 회사 직원들이 친구들에게 저랑 회사 근처에서 밥 먹고 돌아다닌다고 말하면 안 믿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좀 난감해요. "


◆ 김택진 사장은…22세에 '아래아한글' 공동개발, 올해 프로야구단 창단

1989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재학 시절 '아래아한글'을 이찬진 씨와 공동으로 개발해 명성을 얻었다. 현대전자에서 일하며 국내 최초의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인 '아미넷'도 만들었다. 1997년 직원 17명과 함께 엔씨소프트를 설립,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8년에 선보인 첫 작품이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만든 '리니지'다. 이 게임의 누적 매출액은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이후 '리니지2','아이온'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온라인게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4년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레이드앤소울'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 사장은 국내 프로야구 제9구단을 창단, 구단주를 맡고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1년 세계 갑부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최근 업계 최고 이슈메이커로도 떠올랐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