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발생한 일본 동북부 간토 지방의 대지진이 일본 출판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출판사들의 창고가 도쿄와 후쿠시마 사이에 있는 사이타마현에 있는데,책장이 무너지면서 파손됐고 연료 부족과 유통문제가 겹쳐 책을 배송할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출판사가 3월 후반부터 책 출간을 포기한 상태다. 일본의 4월은 신학기와 업무가 시작되는 때라 비즈니스 관련서와 자기계발서가 쏟아져 나오는 시기인데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서도 일본 독자들은 책에서 길을 찾고 있다. 지진 직후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는 역시 위기상황 대처법을 다룬 책들이 차지했다. 《21세기 서바이벌 바이블》은 지진 등의 재난뿐만 아니라 전염병이나 항공기 사고,강도사건 등 각종 위기에 닥쳤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책이다.

지진 피해 속에서 이재민들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부모와 아이들을 위한 지진 안전 매뉴얼》,《방재 봉지에 넣어 대비한다! 피난생활 핸드북》,심리적 상처를 돌보는 《지진 노트-고베 대지진 피해자 167명에게 들은 마음의 방재 매뉴얼》 등도 주목받았다.

그 다음주에는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해 베스트 순위도 바뀌었다. 시민들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방사능 피해에 대해 크게 우려하기 시작하면서 방사능 관련서가 순위에 대거 등장했다. 아마존 종합 2위에 올라온 《원자로 시한폭탄-대지진에 떨리는 일본열도》는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지진이 무슨 징조인지,클린 에너지라는 이유로 추진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정말로 안전한지를 문제 삼으며,원전으로 인한 재난과 일본 파멸의 위기를 경고한다.

또 다른 책 《방사능으로 수도권 소멸-아무도 모르는 지진재난 대책》은 지진으로 인해 원전이 파괴됐을 경우 방사능 오염을 다뤘다. 일본 동해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원전이 폭발하면 6~8시간 만에 수도권이 방사능에 오염된다는 가정 아래 시민들이 미리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숨겨진 원자력 · 핵의 진실-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발전소에 반대하는 이유》 《원폭과 지진》 《원폭열도를 간다》 등도 아마존 상위권에 올라오고 있다.

이런 책들은 모두 이번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출간된 책들인데,잦은 지진으로 인해 시민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팔리다가 대지진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일본 정부의 확실한 답변과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계속 된다면 당분간 이런 관심은 지속될 전망이다.

한유키코 BC에이전시 일본어권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