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거래에는 반드시 대금지불이 뒤따른다. 국제거래의 대금지불은 일반 거래보다 좀더 복잡하다. 초기에는 수입상품의 값을 현물로 지불하는 물물교환 (barter) 이 국제무역의 주류였다.

공산권이 무너지기 이전에 북한이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과 행한 무역도 물물교환이었다. 물물교환이었던 만큼 거래가 표준화되지 못하였고 거래마다 가격도 달랐는데,예컨대 북한이 석유를 수입하면서 그 대금으로 제공한 물자의 품목과 수량에서 소련과 중국이 서로 달랐다.

물물교환 방식으로는 마땅한 거래를 찾기도 어려웠고 상담에 합의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무역의 규모와 범위는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국제금본위제 시대가 시작되면서 금을 화폐로 쓰는 나라가 많아지고 국제무역의 결제도 금을 사용했다. 무역상선과 상단은 수입국에 화물을 부리고 그 대금으로 금을 인수해 실어갔다. 폭풍우와 해적,또는 산적이 출몰하는 시대에 금의 수송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은행들의 국제 금융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수출상과 수입상이 서로 직접 찾아가 상품을 주고받으며 대금을 거두는 일은 서서히 사라졌다.

현대 무역에서 무역화물의 수송은 화물운송회사가 전담하고 대금결제는 은행이 대행한다. 수입계약을 체결한 수입상이 거래은행 D에 상품대금을 입금하면 은행 D는 신용장 (L/C · letter of credit)을 개설하고 수출상에게 이 사실을 통보한다.

일단 L/C가 개설되고 나면 수입상은 예치한 상품대금을 인출해 갈 수 없고,신용장을 개설한 은행 D는 수출상이 계약대로 수출화물을 발송하였음을 증명하면 상품대금을 지불할 의무를 진다.

신용장을 접한 수출상은 수입상을 수취인으로 하여 수출상품을 상선 또는 화물기편에 탁송하고 운송회사로부터 선적을 확인하는 선하증권 (B/L · bill of lading)을 발급받는다.

수출상이 자신의 거래은행 E에 B/L을 제출하면 은행 E는 은행 D에 이것을 전달하고 D로부터 수입상이 입금한 상품대금을 인수하여 수출상의 계좌에 예치한다. 은행 D가 인수한 B/L을 본국의 수입상에게 보내면 수입상이 이 B/L을 해당 운송회사에 제출하고 자신의 수입화물을 인수함으로써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 은행은 국내거래뿐만 아니라 국제거래에서도 대금지불을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운송회사가 상품수송을 대행하고,은행이 대금지불을 대행하는 과정이 이처럼 빈틈없기 때문에 만리타국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계약을 체결하고 믿으면서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