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시장은 신규업체가 진입하기 까다로운 분야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3~4년에 걸쳐 복잡한 임상시험과 보건당국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하는 데다 새 기술 · 기기를 도입하는 데 보수적인 병 · 의원 네트워크도 뚫어야 한다. 게다가 국내가 아닌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면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내 신생기업의 어려움은 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뚫기 어렵다는 의료기기 시장에서 창업 13년 만에 자리를 굳힌 기업이 있다. 피부미용 · 성형용 레이저 의료기 분야 국내 1위,세계 9위 기업 루트로닉(대표 황해령 · 53)이다.

황해령 대표는 4일 경기도 일산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현재 전 세계 60개국,고객사 5000곳을 확보하고 있다"며 "브랜드 인지도는 아직 해외 메이저기업에 비해 약하지만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루트로닉이 처음부터 레이저 치료기로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다. 산업용 레이저와 달리 의료용은 전자 · 광학 · 정밀기계 · 의학을 접목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개발하기가 어렵다. 황 대표는 "치료부위,피부특성에 따라 파장 · 출력 · 펄스폭 등을 달리 설계해야 하는 '좋은 레이저'를 만들기는 정말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주력한 게 연구 · 개발(R&D) 투자.1997년 창업 이후 매년 매출의 10%를 R&D에 투입했고 연구인력도 전체의 30%로 늘렸다.

이 결과 루트로닉은 창업 후 12년 연속 매출 신장을 이뤘다. 수출액도 2003년 150만달러에서 2008년 1100만달러로 9배가량 늘었다. 히트 상품도 많다. 미세성형 치료기 '아큐스컬프'에 이어 문신 제거와 색소병변 치료기 '스펙트라',기미 · 잡티 제거 등 피부병변 치료기 '솔라리' 등이다.

황 대표는 "2006년까지도 제품을 들고 국내 병 · 의원을 찾아가면 '국산 레이저 치료기도 있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내 주요 병 · 의원에 우리 제품이 많이 깔려 있고 글로벌 기업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의뢰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국내 피부미용 · 성형용 레이저 치료기 시장을 석권한 루트로닉은 최근 '날개' 하나를 더 달았다. 지난해 6월 지식경제부로부터 '우수제조기술연구센터(ATC)'로 지정돼 수술용 레이저 치료기 개발사업에 뛰어든 것.연간 5억6000만원씩 5년간 28억원을 지원받는 이 사업은 루트로닉이 제품 개발을 맡고 삼성의료원이 기초임상을 맡아 진행 중이다.

황 대표는 "아직까지 초정밀 수술용 치료기는 전 세계적으로 시판되고 있지 않은데 이 개발과제가 성공한다면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피부미용 레이저 치료기 시장이 10억달러인데,수술용 치료기는 그보다 몇 배 이상 크다"며 "응용분야도 몸속 미세절개 수술,로봇 수술 등 무궁무진하다"고 덧붙였다.

루트로닉은 2012년 초 수술용 치료기 개발을 완료하고 임상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자체 연구를 통해 안과수술용 레이저도 개발 중이다.

일산=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