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사진)는 망명 전에는 김일성대학 총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정교사를 지낸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였다. 최고인민회의 의장 겸 상설회의 의장을 세 번이나 했고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도 깊게 관여했다.

황 전 비서는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나 김일성 종합대학을 거쳐 52년 모스크바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54년 김일성대학 강단에 선 그는 명석한 두뇌와 논리정연한 사고 등으로 당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김일성이 55년 12월 '사상에서의 주체'를 처음 표방했을 때 이를 이론적으로 보좌했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내각 참사관 등을 거쳐 40세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발탁됐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주체사상 확립과정에서 김일성 · 김정일 후계체제를 정당화함으로써 '대를 이은 충성'을 공식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김정일 집권 이후 피폐해진 북한 현실에 대한 환멸과'혁명 1세대'에 대한 김정일의 홀대가 귀순으로 이어졌다는 게 우리 정부의 분석이다.

1997년 귀순 뒤 그는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여왔다. 황 전 비서는 올해 3월 말 미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행정부와 의회,민간단체 인사들을 두루 만나 북한 실정을 고발했다.

이로 인해 그는 북한으로부터 직 · 간접적으로 살해 위협을 받아왔다. 그의 사망원인이 타살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경찰은 타살혐의가 없는 것으로 이날 발표했다. 그가 거주해온 집 내부에는 중무장한 20여명의 보안 요원이 돌아가며 밀착 경호했다. 황 전 비서는 2층에서 취침할 때도 보안 요원 1명이 같은 층에서 비상대기를 하고,1층에서는 나머지 요원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과 침입 센서 관제를 책임진다. 경찰은 자살 가능성도 낮게 보고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