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동학(천도교)의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의 최초 목판본이 발견됐다.

천도교 중앙총부는 4일 “동학 연구가인 윤석산 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가 최근 독립기념관에 기증된 ‘동경대전’을 검토·고증한 결과 천도교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1827∼1898)이 1880년 강원도 인제 갑둔리에서 처음 간행한 ‘경진판’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목판본 ‘동경대전’은 천도교 교조인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남긴 글들을 해월이 처음 간행한 이래 1883년 봄(충청도 목천),1883년 여름(경북 경주),1888년 등 네 차례에 걸쳐 간행됐다.목천판은 계미중춘판,경주판은 계미중하판,1888년판은 무자계춘판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들 판본은 모두 발견됐으나 인제에서 최초로 간행된 경진판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윤 교수가 ‘경진판’으로 고증한 이 목판본에는 출간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고 발간한 이의 발문도 없어 언제 어디에서 간행된 것인지를 알 수 없다.그러나 윤 교수는 다른 판본에 비해 빠진 글이 많은 점,목차나 체제가 수운의 문집 성격을 띠고 있는 점,계미중춘판과 표기가 다른 점,표지의 ‘東經大全’ 필체가 목차의 필체와 같은 점 등을 들었다.

수운이 동학을 사학(邪學·삿된 학문)으로 규정한 정부에 의해 체포돼 순교한 이후 경상도와 강원도,충청도 산간 마을로 숨어 다니며 흩어진 동학교도들을 다시 모으고 교단을 정비한 해월은 각고의 노력 끝에 스승의 가르침을 담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했다.그러나 “경진판에는 글이 많이 빠진 한탄이 있다”고 계미중춘판 발문에서 밝혔다.경진판을 낸 지 3년도 지나지 않아서 계미중춘판을 간행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그런데 이번에 기증된 목판본에는 다른 판본에 있는 내용이 많이 빠져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설명이다.

또 경진판 ‘동경대전’과 함께 기획해 1880년 간행한 필사본 ‘도원기서(道源記書)’의 처음 이름은 ‘최선생문집 도원기서’였는데 이 책에는 도(천도교)의 연원과 역사만 기록돼 있고 수운의 문집에 해당하는 부분은 없다는 것.따라서 ‘도원기서’와 함께 문집에 해당하는 ‘동경대전’이나 ‘용담유사’를 별도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에 발견된 목판본이 문집의 체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다른 판본과 달리 동학의 의식에 관한 설명이 없는 것은 동학의 경전이 아닌 수운의 개인 문집으로 기획·편찬된 증거라고 윤 교수는 주장했다.

계미중춘판에서는 천도교의 절대자인 한울님을 뜻하는 ‘천주’나 ‘상제’,수운을 이르는 ‘선생’ 앞에서만 띄어쓰기를 했으나 이번 목판본에는 이들 외에도 영(靈)·교(敎)·천령(天靈)·강령(降靈)·왕(王) 등의 앞에서도 띄어쓰기를 한 점도 경진판의 근거로 제시했다.계미중춘판은 동학교단으로서의 체제를 갖춘 모습인 데 비해 새로 발견된 목판본은 동학이 한 종교의 가르침으로서 신봉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지 못한 채 발간된 것임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경진판 ‘동경대전’은 동학 교단이 1880년대에 이르러 ‘동경대전’을 간행하는 등 독자적인 종교로서의 모습을 공고히 했음을 보여준다”며 “수운 선생의 유고를 처음에는 문집으로 기획했으나 간행하면서 경전으로 발간한 사실 등이 이를 시사한다”고 말했다.또 최초의 경전 발간에 관해 해월의 구송(口誦)에 의해 간행됐다는 구송설과 원본에 의해 간행됐다는 ‘원본설’,양자를 절충한 절충설이 있으나 이번 목판본으로 볼 때 구송과 여러 곳에 흩어진 원본을 모아 간행한 다음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목판본 ‘동경대전’은 판본을 거듭하면서 내용을 보충하고 잘못된 등을 수정·보완했으므로 최초의 판본이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판본이 아님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같은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오는 23일 오후 2시30분 서울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천도교 교수회가 주관하는 발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