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자였던 프로이트는 꿈을 철학적으로 고찰해 현대심리학의 기초를 다졌다. 그런데 1929년 정신분석학에 관한 프로이트의 강연을 처음으로 접한 독일 소설가 토머스 만은 정신분석학이 의학의 영역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라는 그의 설명에 의구심을 품었다.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의 이론이 문학과 커다란 공통점을 갖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놀랍게도 정신분석학자들은 토머스 만의 문학작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프로이트 또한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독일 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장르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분석학과 문학 작품 간의 공통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름을 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밖에 셰익스피어의 《햄릿》,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실러의 《도적떼》에 이르기까지 문학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와 이론이 갖는 설득력을 실험하고자 했다.

문학가이자 미술사학자였던 앙드레 말로는 청년 시절까지만 해도 고고학 유물을 도굴하기도 했던 모험가였다. 그는 당시 아시아의 프랑스령 식민지에서 주로 활동했다. 여기서 그는 동아시아 예술의 영속성,나아가 모든 예술에서 나타나는 초(超)시간성의 진가를 확인하고 찬미했다. 그가 상상의 박물관을 구상해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의 모든 양식을 그 안에 끌어모으고 하나의 총체를 이룬 것은 그 결과였다.

이 책 《씽커스》는 이처럼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격변의 시대를 살며 지식의 통섭을 이뤄낸 12명의 사상가를 조명한다.

프로이트와 말로를 비롯해 변신의 실존을 산 프란츠 카프카,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행을 상속하는 대신 도서관을 세운 문화이론가 아비 바브르크,문예비평부터 문명비평까지 총체적 지성의 아우라를 형성한 발터 벤야민,나치시대 법학자였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칼 슈미트,동물과 식물의 역사를 예견한 헤겔주의자 알렉산드로 코제브,예술과 정치 및 영국과 옛 소련을 오간 이중생활자 앤서니 블런트,군중과 권력을 파헤친 엘리아스 카네티,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이사야 벌린이 그들이다.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자이퉁'의 인문학 담당자로 20년 이상 일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풍부한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들의 내면을 깊이,넓게 통찰한다. 그러면서 산업혁명 이후 모든 분야에서 변혁이 정점에 이르고,학문이 세분화됐으며,사색의 공간이 사라지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기에도 성찰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던 이들의 학문적 태도에 주목한다.

앙드레 말로는 미술사학자이면서 시대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사상가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줬고,정치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이자 완벽주의 건축가였다. 저자는 이들을 지적 정복자라고 부르면서 점점 사색의 여유와 종합적 학문의 역량을 잃어가는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주요 사상가들이 이뤄낸 인식의 성과물들이 점점 더 현재와 괴리되어 가는 오늘날,옛 사상을 새로이 읽고 재고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