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부성애(?)가 나라를 뒤흔들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얘기다. 유 장관의 딸은 외교통상부 5급에 특별채용됐다. 그것이 문제가 돼 딸과 아버지가 함께 물러나기로 했다. 딸은 전에도 외교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당시 무단결근을 했는데 그 사유를 어머니가 설명해 담당과장이 난감해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유 장관 얘기를 들으면서 '캥거루족'과 '헬리콥터족'이 떠올랐다는 김 과장,이 대리가 많다. 캥거루족이란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헬리콥터족은 헬리콥터처럼 나이가 든 자녀 주위를 맴돌면서 일일이 챙겨 주려는 부모를 일컫는다.

◆캥거루족은 병가도 수시로

전직 장관 아버지를 둔 M씨는 속칭 'SKY(서울대 · 고려대 · 연세대)' 학벌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취직했다. 본인은 '실력대로'라지만,입사 당시 M씨의 아버지는 현직 장관이었다. 문제는 입사 후였다. 근무태도가 엉망이었다. 지각을 밥먹듯이 했다. 그럴 때마다 핑계는 판에 박은 듯했다. "배가 너무 아팠어요. " "차가 길에서 갑자기 멈췄어요. "

M씨의 배경을 알고 있는 부원들은 일단 참았다. 그러던 어느날 부서에 비상이 걸렸다. 화급한 일을 처리해야 해 임원부터 말단 사원까지 철야를 해야 했다. M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사흘 지났을까. 회사 임원에게 모 부처 차관의 전화가 걸려왔다. "장관님으로부터 말씀 들었는데 자제분 몸이 약해서 야근이 힘에 겨우신가 보더라고요. " 별수없이 임원은 그 날짜로 M씨를 야근조에서 해제하고 '칼퇴근'을 허락했다

모 광고회사 사장의 '절친'이자 고객사 사장의 딸이기도 한 L씨도 부친을 잘 둔 덕에 광고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온실 속 화초였던 L씨에게 '빡센' 광고회사 업무는 버거웠다. L씨는 팀장에게 당당히 찾아가 "널널해 보이는 팀으로 옮겨 주세요"라고 요구했다. 바로 튀어 나오려는 험한 말을 애써 눌러 참으며 팀장은 "초딩도 반을 바꿔 달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고 타일러 돌려 보냈다.

L씨는 곧바로 2개월 병가를 냈다. 이틀 후 '헬리콥터'가 등장했다. L씨 부친이 사장 및 인사팀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소속팀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던 것.인사발령이 나자마자 아파서 걷지도 못하겠다던 L씨는 곧바로 출근했다.


◆면접시험장에 웬 부모부대?

한 제약회사 인사담당 임원은 몇 해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면접시험을 치르는 날 한무리의 어른들이 나타났다. 누군가 싶었다. 다름 아닌 응시생들의 부모들이었다. 어이가 없던 임원은 면접시험장에서 물었다. "당신들은 성인인데 부모를 모시고 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그러자 한 응시생은 "요즘은 입사대상 회사를 고르고 입사시험 준비를 부모들과 함께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답했다. 그 임원은 "이제 면접시험장에서 부모들이 손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놀랍지도 않다"며 혀를 찼다.

대기업의 김 모 부장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신입사원이 업무에서 실수를 했다. 일도 곧잘 하던 사원이라 더 단련시키자는 마음에서 시말서를 쓰게 했다. 다음 날 사무실에 웬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다짜고짜 무릎을 꿇으며 "자식을 잘못 가르친 제 탓이니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신입사원의 모친이었다. "안 그러셔도 된다"는 김 부장에게 어머니는 "한번 봐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 부장은 "회사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을 부모에게 말하는 자식이나 그걸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성인인 된 아들의 회사에 찾아오는 부모나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헬리콥터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헬리콥터 부모와 캥거루 자녀는 궁합이라도 맞는다. 하지만 캥거루족이기를 거부하는 자녀도 상당하다. 그런데도 부모는 헬리콥터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한다.

중견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30)가 그렇다. 부모는 '불면 날세라 쥐면 꺼질세라'하는 헬리콥터족이다. 하지만 이씨는 달갑지 않다. 부모의 간섭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독립적 주체로 단련된 이씨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술자리도 잦고 몸도 힘들었지만 이씨는 잘 견뎌내고 있었다. 문제는 이씨의 업무가 못마땅해 노발대발하는 부모였다.

결국 중요한 '갑'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술상무 역할을 하고 이씨가 파김치가 된 날 일이 터졌다.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는 이씨를 데려다준 부장을 붙들고 "쟤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 좋은 대학 나온 게 아니다"라며 일장훈계를 늘어 놓은 것.당시 정신을 잃고 있었던 이씨는 다음 날 아침식사자리에서 전날밤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부모의 말을 듣고 어떻게 할지 전전긍긍해야 했다. 이씨는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한 부장 앞에서 부모를 탓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었다"면서 "부모님이 이제는 놓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진모씨(29)는 부모 덕을 보려다 화를 입은 사례다. 진씨의 부서가 거래하는 회사는 노련한 팀장마저 두손 두발 다 든 '진상 중의 진상'이다. 집에서 진씨가 투덜대자 아버지는 "거기 전무가 내 고등학교 동창인데"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팀장은 그 업무를 진씨에게 맡겼다. 하지만 웬 걸.아버지 친구인 거래회사 전무는 공사가 확실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넌 '괴물'이 아니라 '과물'이다

외국계 소프트웨어 회사에 새로 들어온 경력사원 김모씨(28)의 별명은 '과물'이다. '괴물'이 아니다. '과장님께 물어보고요'의 줄임말이다. 물어봄의 대상은 한모 과장(35)이다. 한 과장에 따르면 '과물'은 '자기 일은 스스로,알아서 척척척~'이라는 원칙을 유년기에 덜 배운 모양이다. 고객이 전화로 컴플레인을 걸어왔다 하면 '과물'은 큰 소리로 외치고 바로 전화를 돌린다. "고객님~ 우리 과장님 바꿔드릴게요~." 부장이 "업무기획안 이게 뭐야!"라고 버럭 화를 내면 바로 뒤로 휙 돌며 "저기 우리 과장님과 상의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라고 무마하려 든다.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거래처에서 "한번 쏘지?"라며 성의표시를 요구하면 한 과장에게 전화해서 메뉴까지 상의하곤 한다.

이처럼 직장 내 캥거루족은 누군가에게 항상 기대려 한다. 반드시 부모가 아니라도 된다. 때론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고,동료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배우자나 애인에게 기대려 하는 사람도 상당하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이모 대리는 "프레젠테이션 순서가 되면 반드시 일을 집에 싸갖고 가는 직원이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알고 보니 그 직원의 남편이 자료를 만들어 주더라"고 웃었다.

이관우/이고운/강유현 기자 ccat@hankyung.com

▼이 기사는 독자 sarani989님의 아이디어 제공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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