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해청아파트 2단지를 헐고 지은 롯데캐슬프레미어 176㎡(53평)에 사는 김모씨(63)는 밤잠을 설친다. 한때 23억2000만원까지 올랐던 아파트를 21억원에 내놨다가 찾는 이가 없어 19억원으로 내렸지만 석 달째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2007년 초 조합원 분양권을 취득한 김씨는 넓은 평형을 받으려고 추가분담금 5억원을 저리로 대출받았다. 한 달에 이자만 200만원이다. 김씨는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으려고 3년을 기다렸다"며 "집값이 떨어지는데도 이자는 고스란히 내고 팔리지도 않아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월 생활비만 400만~500만원


강남권 아파트 단지에서 '하우스 푸어' 급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빚을 얻어 고가아파트를 샀다가 부동산 침체로 인한 가격 하락과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해 내놓는 물건들이 증가 추세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던 2007~2008년에 입주해 '3년 보유,2년 거주'인 양도세 감면 대상 단지에서 매물이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다. 삼성동 부동산타운공인중개의 김혜순 대표는 "9억원 미만이면 면제,9억원 이상은 초과분에 대해서만 과세돼 요건을 갖춘 단지에서는 예외없이 매물이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입주 2~3년차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총 3만4000여채에 이른다.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반포자이에서도 올 연말 급매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반포동 태성공인의 이상훈 대표는 "조합원이라도 전세를 주는 바람에 실거주 2년 요건을 채운 사람이 많지 않다"며 "반포자이 집주인의 80~90%가 융자를 끼고 있어 거주 2년을 충족하는 12월이면 급매물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3억~4억원 깎아도 안 팔려 발동동


'하우스 푸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올스톱된 거래다. 이달 들어 입주 3년차가 되는 '잠실 트리지움' 인근의 이상규 한울공인 대표는 "3개월 전 21억원에 내놨다 팔리지 않은 150㎡(45평)를 4억원이나 낮췄지만 팔리지 않고 있다"며 "대형일수록 매수세가 없어 집주인들이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대부분 가격 급락에도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5억원 선에서 거래됐던 반포자이 116㎡(35평)는 12억5000만원에,전 고점인 2008년 12억7500만원이던 대치동 아이파크 85㎡는 11억원에 각각 매물로 나왔다.

반포자이 165㎡(50평) 아파트를 6억원의 빚을 내 구입한 이모씨는 "작년 150만원이던 재산세가 올해 247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며 "월 이자 300만원이 부담스러워 거주 2년 요건만 채우면 급매물로 내놓을 생각이지만 팔릴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거래 침체 계속되면 사회 문제화 가능


하우스 푸어들은 은퇴를 시작했거나 앞두고 있는 베이비 붐 세대와 직결돼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712만명의 은퇴가 올해부터 시작된다. 이에 따라 강남에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은퇴 세대들이 집을 팔아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강남 이탈'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시장 침제로 발이 묶였다.

전문가들은 하우스 푸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들이 집을 팔고 떠날 수 있을 정도로 거래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매매가 계속 얼어붙으면 앞으로 사회 문제로 비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일수 씨티은행 부동산 PB팀장은 "하우스 푸어 문제는 은퇴 자금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베이비 부머들의 노후 문제로 직결될 것"이라며 "강남에 집 한 채를 가진 중산층들이 이를 처분해 노후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하우스푸어(house poor)

'내집을 갖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말하는 신조어다. 무리하게 대출받은 돈으로 아파트를 샀지만 집값이 떨어지면서 빚을 제때 못 갚아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산층을 일컫는다. 수도권 9만세대 등 전국적으로 198만세대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