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아파트 공급계약 체결 때 분양가의 90~95%인 중도금과 잔금을 대출하는 조건으로 분양했습니다. 하반기 입주가 본격화되면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요. 입주 이후 자금흐름을 감안해 신용등급평가도 큰 어려움 없이 넘겼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중견 건설업체 분양담당 임원)

입주 포기 사태가 확산되면서 건설사와 시행사들의 유동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 채권은행 등의 구조조정 칼날을 피한 건설업체들이 입주 포기라는 복병을 만나 연쇄적인 부도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하반기 입주 집중…갈등 확산될 듯

입주 거부 및 포기는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상반기에 비해 입주 물량이 늘어나는 데다 분양 당시 분양가상한제를 피해 고분양가로 공급한 아파트가 대부분이어서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입주 물량은 전국에 걸쳐 16만3092채로 상반기(14만4357채)보다 12.98%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2만2226채가 입주하는 서울과 1만2945채의 집들이를 시작하는 인천의 경우 상반기에 비해 각각 29.05%,156.74% 증가한다. 경기도는 5만8735채로 상반기(6만1110채)보다 3.89% 줄지만 분양가상한제를 피한 물량이 대부분인 만큼 입주 포기나 거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미윤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과장은 "하반기 입주할 아파트의 대부분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은 곳이어서 입주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건설사 · 시행사 유동성 위축 불가피

입주 거부 및 포기가 늘어나면 건설경기 및 분양시장 침체 등으로 가뜩이나 사정이 어려운 건설사나 시공사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을 빌려준 금융사에도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아파트 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일으켜 자금을 확보했던 시행사나 건설사들이 중도금 잔금이 들어오지 않아 만기 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입주를 앞둔 아파트 건설 현장들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인해 초기 계약금을 낮추고 잔금 비중을 높인 상태여서 시행사나 건설사들의 자금 압박이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수도권에서는 5% 미만의 계약금을 내걸고 나머지 95%에 해당하는 중도금과 잔금을 입주 시기에 내도록 한 단지도 적지 않다.

더욱이 하반기 입주 예정 아파트의 경우 1000~2000채 안팎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가 많아 건설 · 시행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는 12월 입주할 고양시 덕이동의 '하이파크시티 신동아파밀리에'가 2884채에 이르는 것을 비롯해 인천 남동구 고잔동 한화 꿈에그린 월드에코메트로가 1808채,충북 청주시 복대동 지웰시티1차가 2164채 등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일단 은행과 시행사 간에 채권 · 채무 관계가 형성돼 있지만 건설사들이 지급보증을 한 사례가 많아 금융권으로부터 대위변제 요구가 들어올 경우 건설사들도 타격을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태풍 또 부나"

일각에선 입주 포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가뜩이나 불안한 건설업계에 또다시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몰아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시행사는 물론 주택사업 외에 토목,해외 플랜트 등 사업 다각화에 실패한 건설업체의 경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금흐름이 좋은 건설업체는 당분간 큰 문제가 없지만 시공능력평가 기준 5~10위권 밖에 있는 건설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한 중견 건설업체 임원은 "하반기 입주에서 생기는 자금흐름을 바탕으로 올해 사업계획을 작성했다"며 "입주 지연으로 자금 운용 전반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