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계약이 줄줄이 해지되면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설사는 물론 자금을 댄 연기금 은행 등 재무 · 전략적 투자자들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의 손해를 볼 겁니다. "(대형건설사 임원)

공모형 PF사업들이 대거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진행 중인 공모형 PF사업은 모두 44개.금액기준으로는 120조원을 웃돈다. 이들 가운데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토지 중도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속출하더니 올 하반기 들어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가 본격화되고 있다.

◆황금알이 애물단지로

공모형 PF 사업이 표류하게 된 근본 원인은 부동산경기 침체다. 대부분의 공모형 PF사업은 부동산 경기가 활황세를 보인 2000년대 초 · 중반 시작됐다.


이때만 해도 공모형 PF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다. 신도시나 구도심의 핵심지역에 지어지기 때문이다. 건설사 중심으로 구성된 공모형 PF 시행사들은 앞다퉈 수주 경쟁을 벌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공모형 PF사업장에 들어가는 시설은 주로 상업시설 호텔 업무시설 주상복합 등이다. 시행사는 이런 시설들은 선분양해 토지대금과 건축비를 조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장침체로 분양이 불가능해지면서 땅값조차 마련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 알파돔시티 사업의 경우 상업시설 선매각을 시도했지만 투자자 관심을 끌지 못했다.

상황이 바뀌자 시행사는 토지대금을 금융회사로부터 빌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LH 서울시 등 토지매각 주체에 신용제공을 요구했다. 토지 매각주체들은 이런 요구를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사업 주체 다각화를 통해 PF사업 중단을 막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주거용 건물이 들어서는 토지는 건설사에,백화점 등의 부지는 유통업체에,업무시설은 자산관리 업체에 분할 매각하면 특정 부지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해당 주체를 바꿔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땅장사에 나선 공기업도 책임

공모형 PF사업은 신도시 등에 기반시설을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 도입됐다. 아파트 입주가 끝난 지 몇 년씩 지났는데도 상업시설 등 기반시설이 갖춰지지 않는 문제점이 1기 신도시에서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모형 PF사업이 표류하면서 당초 취지와 달리 2기 신도시나 택지지구의 기반시설 공급이 오히려 늦춰지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공기업의 책임도 크다.

공기업들이 사업자 선정의 주요 기준으로 삼은 것은 땅값이었다. 가장 높은 땅값을 제시한 곳을 사업자로 선정함으로써 과열을 유도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알파돔시티의 토지 감정가격은 3.3㎡당 3300만원이었지만 시행사 측이 구입한 가격은 3.3㎡당 5670만원이다. 알파돔시티 총투자비 5조671억원 중 토지대금이 2조5580억원으로 절반 가량이다.

공기업들은 또 사업내용과 시설이 비슷한 공모형 PF사업을 여기저기서 벌여 상업시설 호텔시설 등을 공급 과잉상황으로 몰아갔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서울 반경 30㎞ 이내에 8개의 유사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며 "사업지별로 도입되는 시설이 중복되는 데다 면적도 과다해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최종 피해자는 신도시 입주민

공모형 PF사업 좌초로 1차 피해는 시행사가 입게 된다. 토지계약금과 이행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때문에 아파트 미분양에 이어 공모형 PF사업이 건설사에 치명타를 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한류우드2구역 사업에선 시행사가 계약금 549억원을 손해보게 됐다.

인천도화지구의 경우 SK건설 컨소시엄이 자금조달에 실패해 자본금 430억원을 날릴 위기에 몰렸다. 시행사 측은 사업비를 PF대출로 충당할 예정이었지만 대출을 못받아 작년 11월4일 계약을 해지당했다. 이후 인천도시개발공사는 1조3000억원가량의 공사채를 발행,자금을 조달해 공사를 추진 중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입주민들이다. 기반시설이 없어 인근 지역으로 쇼핑을 가거나 학원을 다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판교신도시 삼평동 판교역공인 관계자는 "판교역은 예정대로 12월 개통 예정이지만 역사 상층부와 인근에 지어질 알파돔시티 사업이 불가능해지면서 판교역세권 상권도 형성되기 어렵게 됐다"며 "판교 주민들은 앞으로 5년 이상 시장을 보러 분당까지 갔다와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