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크리스티 경매장.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36세에 빈털터리로 요절한 이탈리아 조각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64㎝ 짜리 조각 '여신의 두상'이 출품되자마자 20여명의 거물급 입찰자들이 달려들었다.

10여분 후,미국과 유럽 수집가들 사이에서 긴박하게 경매를 진행하던 프랑수아 드 리클 크리스티프랑스 회장이 익명의 전화입찰자를 낙찰자로 선언했다. 공개된 최종 낙찰가는 무려 3850만유로.세금과 각종 수수료를 포함해 4320만유로(약 630억원)에 달하는 모딜리아니 작품 사상 최고가 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초 추정가(400만~600만유로)의 10배 가까운 가격에 이 작품이 팔리자 크리스티 측은 "프랑스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린 작품"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20일 "지난주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딜리아니 조각 작품이 초고가에 거래되면서 최근 고가 미술품 시장의 '전설'로 평가받던 마티스 유화 작품(3590만유로)의 기록이 깨졌다"며 "모딜리아니 작품을 둘러싼 경매전은 희소성 높은 걸작에 굶주린 미술시장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188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20년 파리에서 사망한 모딜리아니는 총 27점의 조각 작품을 남겼고 이 중 17점이 유럽과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개인 소장품은 10점에 불과해 유명세와 희소성에 따른 투자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4년에도 모딜리아니의 유화 작품 '잔 에뷔텐의 초상화'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추정가(600만달러)의 5배 이상인 3100만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여신의 두상'은 모딜리아니가 전성기 때인 1910~1912년 파리에서 석회암을 이용해 만든 작품으로 반쯤 감은 눈과 수직의 긴 타원형 얼굴이 조화를 이루면서 '존재감과 품격,우아함을 지닌 걸작'으로 평가받아왔다.

1912년 파리 가을살롱의 큐비즘 전시회에'미의 여신(Deesses de la Beaute)'이란 제목으로 선보인 7점의 연작 중 하나라는 역사성도 작품의 명성에 한몫 했다. 프랑스의 유통체인 모노프리 공동설립자인 가스통 레비가 소유했던 이 작품은 지난해 독일 본 쿤스트할레에서 공개돼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프랑수아 드 리클 크리스티프랑스 회장은 "희귀 작품이 경매에 나올 때 미술품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며 "크리스티가 올해 모던아트 분야에서 내놓은 130점 중 82%가 낙찰되는 등 미술품에 대한 투자수요도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