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ㆍ일 'SOC 삼국지'…美·브라질 고속鐵 잡아라
#1."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조만간 중국 정부에 금융 지원을 요청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합니다. " 430억달러 규모의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수주전과 관련,김영웅 KOTRA 실리콘밸리 무역센터장이 전하는 현지 분위기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재원 마련에 곤란을 겪자 중국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 한다는 얘기로,실리콘밸리 비즈니스저널 등 지역 언론들은 양쪽이 물밑 교섭을 진행중이라고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2.간 나오토 일본 신임 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 1일,일본을 먹여 살릴 5대 중점 사업 가운데 원자력발전,고속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수출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타도'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글로벌 SOC 시장을 둘러싼 한 · 중 · 일 신(新) 삼국지가 전개되고 있다. 전통적 강자였던 유럽이 재정위기로 한발 물러나면서 글로벌 시장의 대형 프로젝트 대부분이 3국간 경쟁으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자금력 앞세운 중국,절치부심하는 일본


대표적인 경합 분야는 고속철도 프로젝트다. 최근까지 고속철도 사업은 프랑스,독일 등 유럽계가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다. SOC 등 대형 프로젝트엔 정부의 금융 지원이 필수적으로 곳간이 넉넉지 못한 유럽계는 밀릴 수밖에 없는 것.

연내에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인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은 현지 언론에서도 한 · 중 · 일 3국을 유력 후보로 꼽고 있다. 최선욱 KOTRA 상파울루 무역센터 조사담당관은 "브라질 정부가 각 컨소시엄별로 70억헤알(1달러=1.84헤알)의 자본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내걸었다"며 "100% 공기업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부의 자금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중국이 약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상길 현대로템 상임고문(전 철도사업본부장)은 "중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고속철도를 비롯 각종 SOC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현대,SK건설 등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 컨소시엄은 기술 이전과 공기 단축을 당근으로 내세워 중국의 역공에 맞서고 있다.

일본의 '전투 방식'이 확 바뀐 것도 한국으로선 부담이다. 최근 일본의 품에 안긴 베트남 고속철도 사업만 해도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이 베트남 주요 인사들을 만나는 등 '톱 세일'을 시도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그동안 민간 기업에 모든 걸 맡기고 정부는 뒷짐만 지던 행태에서 180도 바뀐 셈이다. 올 연말에 발주 예정인 110억달러 규모의 UAE 철도 프로젝트를 비롯 미국 캘리포니아,터키의 고속철도 프로젝트에서도 중국과 일본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 것으로 보인다.

◆철도,발전 등 대형 프로젝트마다 경쟁

동남아시아 시장을 잡기 위한 한 · 중 · 일의 전쟁도 치열하다. 이들 지역은 빠른 경제 성장으로 발전 · 철도 · 도로 등 SOC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 인도네시아 국영 전력공사가 지난 4월 말 입찰을 실시한 32억달러 규모의 자와섬 석탄화력발전사업은 한국(한국전력공사),일본(J파워,마루베니상사 등),중국(신화능원) 등 3국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라오스에 동남아 경기대회(SEA 게임) 주경기장을 포함한 18개 경기장 건설에 4600만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등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일본도 메콩강 5개 지역 개발 프로젝트에 55억달러의 금융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캄보디아에 새마을운동을 전수해 주는 등 개발 경험 컨설팅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중동 발전 시장에서도 중국의 저가 공세가 만만치 않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라빅 화력발전소를 중국의 SEPC란 기업이 수주해 파란을 일으켰는데 중국 컨소시엄이 써낸 가격이 2위와 3억5000만달러나 차이가 났을 정도다. 이 밖에 아프리카 발전 시장은 중국이 맨 먼저 깃발을 꽂고 한국과 일본이 쫓아가는 양상이다. 김광희 KOTRA 자원건설플랜트 팀장은"한국과 일본으로선 중국의 기술력이 더 따라오기 전에 시장을 선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