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가 휘몰아쳤던 지난해 국내 최고기업인 삼성도 어쩔 수 없이 '위기와 생존'을 핵심 키워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삼성그룹 위기극복의 상징이자 글로벌 도약의 주역인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철학인 '지행(知行)33훈'을 재해석한 '신지행 33훈'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경영의 중추 역할을 하는 임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핵심단어는 '미래,변화,트렌드'로 바뀌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리딩컴퍼니 자리를 굳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 176억달러에 머물렀던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2030년 1000억달러로 끌어올리자는 야심찬 목표도 제시됐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임원교육 자료를 요약 · 소개한다.

◆소비 트렌드 변화의 길목을 선점하라

미래 소비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 중 벤치마킹 모델로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제시됐다. 인텔은 대표적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지만 연구개발의 출발점은 최종 소비자라는 것.그래서 최종소비자의 가치와 동기를 연구하기 위해 문화인류학자,심리학자,사회학자로 구성된 연구조직 '피플 앤드 프랙티스 리서치'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임원 교육을 통해 인텔처럼 소비자 변화를 연구해야 트렌드 변화의 길목을 선점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삼성이 본 미래 소비트렌드의 변화는 2S(Smart Consumer,Slow Life)+4G(Greenist,Grey,Girl,Global Digital generation)로 요약된다. 첫 번째 트렌드는 똑똑한 소비자의 등장이다. 비용 대비 가치를 따지는 소비자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IBM이 개발 중인 물낭비 방지기구인 '스마트 워터미터',타타그룹이 만든 한 채에 1000만원짜리 아파트인 '수비 그라하' 등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했다.

여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도 또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패스트푸드의 반대말인 슬로푸드,자연 속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슬로시티,집에서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홈스파 등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은 또 친환경 소비자의 존재도 주목했다. 의식주는 물론 전자제품,자동차도 친환경성 여부가 구매 기준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

네 번째 트렌드인 고령화에 잘 대응한 사례로는 헝가리의 소프론시가 제시됐다. 소프론시는 관광자원인 고성(古城)을 기반으로 서유럽 지역의 절반 가격으로 임플란트를 제공하고 있다. 한 임원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로 구매력이 큰 고령층 소비시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삼성 임원들은 또 중국과 인도를 합친 것보다 더 커질 여성용 상품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문을 받았다. 2020년 중국과 인도의 GDP(국내총생산)를 합치면 30조달러지만 2020년 여성들의 가처분 소득은 32조5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금융,자동차 등 대표적 남성중심의 시장에도 여성의 파워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라는 주문도 곁들여졌다.

◆직원 변화에도 주목하라

교육에 참석했던 임원들에게 던져진 또 하나의 임무는 패러다임 변화에 맞는 직원 및 조직관리였다. 첫 번째 과제는 신세대,여성,외국인 증가로 조직 구성이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이번 교육을 맡은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다양성은 아이디어와 기회를 창조한다"며 "다양성을 창조적 시너지로 변화시키려면 성선설에 입각한 자율형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베이비붐 세대 은퇴에 따른 숙련기술 인력 부족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향후 10년 내 주요 선진국에서 숙련 기술인력의 3분의 1 정도가 은퇴할 예정인 만큼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의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에 따라 숙련기술 인력 재활용,외국인 인력활용 확대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