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서 가운데선 이례적으로 신데렐라처럼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은 《행복의 조건》(프런티어 출간)이다. 딱딱한 숫자가 넘칠 것만 같은 '보고서'가 잘 팔리는 것도 특이한 사례다. 그 비결은 아무래도 '하버드' 브랜드의 힘이 큰 것 같다. 연구 주체인 하버드의 권위에다 최고 명문대 하버드 졸업생들의 생애를 70년간 추적했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많은 궁금증을 갖게 했을 것이다.

조사 대상들의 평생을 추적한 결과를 담은 이 책에는 하버드 졸업생 268명 외에 조사 대상이 더 있다. 천재 여성 90명,그리고 빈민가 출신 남성 456명 등이다. 좋은 학교, 좋은 머리, 그리고 비루한 유년 시절 등으로 대별한 셈인데 오히려 빈민가 출신들이 과연 행복했을까에 더 관심이 갔다.

빈민가 출신들을 구체적으로 보면 이들은 우리의 부모 세대를 일컫는 '헝그리 세대' 이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자라면서 대공황과 세계대전 등 극단적인 사건들을 겪었다. 조사대상 집단 가운데 두뇌도 가장 나빠서 평균 IQ가 천재여성(평균 151) 하버드 졸업생(130~135)과는 비교도 안되는 95에 불과했다.

실제 사회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빈민가 출신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고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6%에 불과했다. 50세 당시 평균 연봉이 3만5000달러로 하버드 출신(10만5000달러)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70세 미만 사망률도 37%에 달해 천재 여성(20%)과 하버드 졸업생(23%)보다 훨씬 높았다.

묘한 것은 이들이 꼽는 행복의 조건도 결국 하버드대 출신이나 천재 여성들과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행복의 조건 일곱 가지를 보자. '고난을 이겨내는 자기 나름의 방어 시스템'이 가장 중요했고 △평생 교육 △안정적인 결혼생활 △비흡연 △적당한 음주 △규칙적인 운동 △적절한 체중 등이었다. 학벌이나 재산 같은 외적 요소는 행복의 조건에 끼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고난을 이겨내는 방식을 반드시 47세 이전에 갖춰야 중장년 이후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갖추기 위한 필요한 개인적인 자질은 네 가지다.

"첫 번째 자질은 미래 지향성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두 번째 자질은 감사와 관용이다. 컵에 물이 반만 남았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반이나 차 있다고 여길 줄 아는 능력이다. 세 번째 자질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느긋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다. 네 번째 자질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준다거나 사람들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

행복론은 대부분 만족론과 통했다. 분수를 알고 자족하면 행복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하나의 긴 과정이요 출발이 불우했다고 해도 신념을 갖고 달리면 누구라도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결론으로 희망을 준다.

우리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겨우 대학에 가도 '개천 출신'은 '알바'를 하느라 성적이 나빠 장학금을 타지 못한다고 한다. 성적이 나쁘니 취직도 잘 안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개천 출신들이 더 행복하다는 보장은 물론 없다. 일자리 앞에서 기가 꺾여 안팎으로 좌충우돌하는 청년들에게 '빈민가 행복론'이 위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