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중 FTA(자유무역협정) 문제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사안이다. 정치적으로도 핵폭탄급 파괴력을 갖고 있는 이슈다. 값싼 중국의 농산물이 홍수처럼 밀려들 경우 한국 농업은 궤멸상태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야당과 농민단체의 반발,사회적 혼란도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의 FTA 협상은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농수산물 중에서도 신선제품이 문제다. 양상추 배추 파 등의 채소는 수도권 근교에서 서울로 공급되는데,중국 산둥지역에서도 반나절이면 서울로 수송이 가능하다. 수송 시간이 길고 비용도 많이 드는 미국 농수산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비교우위가 떨어지는 농업의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게 최대 걸림돌"이라며 "지금도 중국산 농산물이 판을 치는데 한 · 중 FTA가 체결되면 그 결과가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말 한국을 공식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양국 간 FTA가 체결되면 2013년까지 한 · 중 무역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FTA의 적극적인 추진을 촉구했다. 우리 정부는 경제협력 확대라는 원론적 수준만 되풀이한 채 확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계와 학계에선 한 · 중 FTA 체결이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많다. 한중관계발전 공동연구 전문가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진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리스크를 피하면 얻는 것도 없다"며 "이번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 중 FTA 협상을 위한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현재 한 · 중 FTA 협상을 위한 양국 간 산 · 관 · 학 공동연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향후 중국의 가공무역 급감,중국 내수시장 성장,중국과 동아시아의 협력 확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한 · 중 FTA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들도 한 · 중 FTA를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한 · 중 FTA 공동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415개) 중 71.3%가 FTA 체결에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8.7%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FTA 체결을 찬성하는 이유는 수출환경 개선을 통한 대중 수출 증가(50%)가 가장 많았고,중국시장 점유율 확대에 따른 경쟁력 상승(38.2%),외국 및 중국기업들의 국내 직접투자 확대(6.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 · 중 FTA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관건은 어떤 방향이든 맹목적인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농업부문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밀어붙여서도 안 되지만,산업구조 고도화와 동아시아 경제블록 시대를 앞두고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 진입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FTA 체결은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삼고 있는 우리에겐 기회를 넓혀줄 게 분명하다"며 "정부는 향후 중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면서 취약산업 경쟁력 확충방안을 마련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