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과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가 전쟁을 치르고 있다. 폭스뉴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및 그의 정책과 관련,사사건건 비판적 보도를 견지해온 방송이다. 미국 내 보 · 혁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백악관의 애니타 던 커뮤니케이션담당 국장은 11일 폭스뉴스를 맹폭했다. 그는 CNN방송에 출연해 폭스뉴스를 "공화당의 선전창구"라고 규정했다. 최근 "폭스뉴스는 뉴스방송을 가장한 채 자기 주장만 늘어놓는 저널리즘"이라고 비난했던 그가 다시 폭스뉴스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던 국장은 "폭스뉴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념적 반대자인 동시에 공화당의 선전창구이거나 리서치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가 지켜봐온 폭스뉴스는 공화당의 날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면서 "폭스는 공화당의 화두를 가져다가 이를 방송하고,(오바마 행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받아들여 방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던 국장은 "그래도 오바마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하지만 정치적 반대자들과 전투를 벌일 무장을 하고 출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폭스뉴스가 대통령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만큼 백악관도 굳이 폭스뉴스를 정당한 뉴스방송사로 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주 "정확하지 않거나 비우호적인 보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으나 지난 1월 이후에는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다. 폭스뉴스는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황금시간대 연설을 방영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백악관과 폭스뉴스는 한때 휴전을 갖는 듯했다. 지난달 로저 애일즈 폭스뉴스 사장과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이 뉴욕에서 만나 화해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마이클 클레멘트 폭스뉴스 선임 부사장은 이날 낸 성명에서 "백악관은 통치를 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대선후보 시절의) 선거 모드에 빠져 폭스뉴스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서 "유권자들이 걱정하는 중요한 문제에 그런 에너지를 쓰는 게 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악관 던 국장의 CNN방송 출연은 이에 대한 반격 차원이었다. 폭스뉴스 측은 백악관이 흥분해 잽을 날릴수록 시청률이 더 올라가고 있다고 희색이다. 지난주 현재 폭스뉴스의 평균 시청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만명 늘어난 120만명에 달했다.

폭스뉴스는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가 소유하고 있다. 뉴스코프는 월스트리트저널 등도 거느리고 있다. 부시 전임 정부가 선호했던 폭스뉴스는 지난해 대선 때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지했다. 폭스뉴스의 인기 정치평론 프로그램인 '글렌 벡 쇼'의 글렌 벡 진행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종주의자 딱지를 붙이고 백악관 관계자들을 공산주의자,과격분자 등으로 언급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