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사무라이가 명망 높은 선승을 찾아갔다. 그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선승이 말했다. "너 같은 무지렁뱅이와 얘기하느라 시간 낭비하기 싫다. " 사무라이는 버럭 화를 내며 칼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불경한 놈,네 목을 당장 베어버리겠다. " 선승이 조용히 말했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오." 격분했던 사무라이가 칼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높은 식견에 감읍했습니다. " "이것이 바로 천국이오."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이 '감성지수(EQ)'를 설명하면서 들려준 예화다. 감성지수는 지능지수(IQ)와 대조되는 개념.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의미한다.

감성지수를 가장 뜨겁게 받아들인 분야는 교육계였다. 미국은 모든 주에서 수학과 언어 과목처럼 감성지능 교육(SEL)을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했다. 유네스코는 10가지 원칙을 담은 권장서를 140개국 교육부 장관에게 발송했다. 아시아권에서는 교육강국 싱가포르가 감성지능 교육을 적극 받아들였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의 기업 감성지수는 매우 중요하다. 우선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고 재교육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대기업들이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감성공학'과도 직결된다.

제품의 디자인에서부터 기업의 포지셔닝까지 소비자와의 감성적 접점은 갈수록 긴요해지고 있다. 기존의 '당근과 채찍' 전략만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팀원들에게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는 리더는 우선 팀원들의 감성지수부터 높인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전 CEO 로버트 캘러허와 괴짜 CEO로 불리는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드물다. 얼마 전 한 스토리텔링 전문 기관이 조사한 결과 500개 기업의 임원진 40%가 "우리 회사의 감성지수는 65점"이라고 답했다. 꽤 높은 편이다.

이에 앞서 삼성경제연구소가 CEO 436명에게 'CEO의 예술적 감각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을 때도 응답자의 96%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똑같은 질문을 직원들에게 던지면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다. 직원들이 생각하는 회사의 감성지수는 평균 25점이었다. 리더와 직원이 생각하는 감성지수가 이처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머리로만 알지 몸으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감성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가장 쉽고 재미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책상머리에서 기획서나 보고서에만 매달리면 지능지수는 올라갈지 모르지만 감성지수는 내려간다.

직원들을 극장으로 보내자.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 '해운대'와 700만 관객을 돌파한 '국가대표'를 보며 장면마다 가슴 조이고 환호하게 하자.대학로 소극장과 판소리 무대에서 마음껏 놀고 소리 지르게 하자.다음 주부터 홍익대 인근에서 펼쳐지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도 참가하게 하자.시집과 소설을 읽으며 가슴 뛰게 하자.감성지수를 높이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가을이다.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