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회장은 바쁘다. 30분 단위로 스케줄이 잡힐 정도로 일상이 빡빡하다. 이메일마저 비서가 대신 체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대기업 회장이 IT(정보기술)에 익숙한 10~20대들도조차 잘 알지 못하는 단문 블로그 서비스인 '트위터'에 빠졌다. 주인공은 박용만 ㈜두산 회장이다. PC나 휴대폰에서 블로그를 쉽게 사용하도록 140자 미만의 짧은 글만 등록하는 트위터는 이란 반정부 시위를 전 세계에 알리며 화제가 됐다. 해외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사용자가 많지 않다.

50대 중반의 대기업 총수가 트위터 같은 곳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이유다. 트위터에서 박 회장의 글을 보기 위해 등록한 사람(팔로어-Follower)은 이미 800명을 넘었다. 피겨 요정 김연아(팔로어 3만3000명) 같은 인기는 아니지만 일반인 중에서는 상위급이다.

박 회장의 트위터(@Solarplant )를 방문해보면 그룹 회장에 대한 편견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후덜덜" "헐" 등 말투부터 10대들 타입이다. "창으로 내려다 보니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공사가 한창인데 굴삭기들이 많다. 캣 한대,볼보 두대,현대 한대,두산 다섯대! !아싸~~!" "후덜덜,지금 부인마마가 아이폰 째려보십니다. 부인마마 귀가하셔서 놀아드려야 해서 이만 나가야겠슴다^^."소소한 일상의 얘기까지 그룹 회장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 분이 맞나요?" "회장님 트윗 말투는 완전 신세대시네요"까지 방문자들의 감탄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찬찬히 박 회장의 글을 읽다 보면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된다. 박 회장이 아직 국내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애플 아이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트위터 글을 올리기 때문이다. 미국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박 회장은 현지에서 애플 아이폰에 가입했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로밍 서비스를 이용해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계속 이용하고 있다. 이 정도면 IT 기기를 잘 아는 얼리 어답터 중에서도 고수급이다.

두산 오너 일가들의 IT 호기심 역사는 형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계 관계자는 "박용만 회장뿐만 아니라 그룹 총수 일가가 모두 새로운 기기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이 재계에서 처음으로 1990년대 초반 이메일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이런 총수 일가의 '얼리 어답터'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박용만 회장이 IT에 일찍 눈을 뜨게 된 데는 형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성 회장이 대학 입학 기념으로 컴퓨터를 선물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 일찌감치 IT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회사 관계자는 "박 회장은 최근 아이팟 터치를 여러대 구입해 직원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안재석/김태훈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