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배고파 우는 아들을 모른 체 할 것인가. / 눈에 보이는 무엇이라도 먹고 살 것이라면 집어줄 것이 아니냐.// 내 피라도 먹고 살 수 있다면,내 살이라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주어서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중략)// 내어준 그를 받아먹고 그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내 몸을 남에게 내어주는 것 아니냐.'(<내 살을 먹어라> 중)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을 지낸 이문희 대주교(74)가 두번째 시집 《아득한 여로》(문학세계사)를 냈다. 첫 시집 《일기》를 펴낸 지 19년 만이다.

경북고 시절부터 문예반에서 활동했고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도 시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이 대주교는 1960년대 프랑스 리옹신학대 철학과와 파리 가톨릭대 신학부를 다닐 무렵 쓴 시부터 최근작까지 50여편을 6부로 나눠 시집에 담았다. 유학 시절을 포함해 타국에서 겪었던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산 · 바다 · 꽃 등 대자연 앞에서 느낀 경외감 등을 따뜻하면서도 정갈하게 시어로 다듬었다.

예수의 생애를 시어로 표현한 <예수> 연작과 <천당> 연작,<내 살을 먹어라> 등은 신앙 안에서 시와 교감해온 그의 삶을 엿보게 한다. 시집 맨 첫장의 <자화상>에서도 그는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큰 울림을 전한다.

2007년 대구대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지난해 1월 식도암 수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인 그는 "20여 년 전 <자화상>을 썼을 때나 지금이나 내 자화상은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