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일본 교토 북서쪽의 작은 마을 사가노에 있는 전통문화 박물관 시구레덴.정문을 통과하자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를 하나씩 나눠준다.

전시실 바닥에는 45인치 액정표시장치(LCD) 화면 70개가 깔려 있다. 화면 위에 올라서자 LCD 전체가 교토시 위성지도로 바뀐다. 동시에 DS 화면에는 검색창이 뜬다.

교토의 명소 긴가쿠지(금각사)를 선택했더니 LCD 화면에 새 한 마리가 나타나 그곳으로 안내했다. 여기선 DS가 게임기가 아니라 박물관 길라잡이다.

일본의 게임업체 닌텐도가 교토시에 20억엔을 기증해 2006년 완공한 이 박물관을 둘러보면 닌텐도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이 나온다. DS를 통해 일본 전통 시(詩)도 익히고 시의 내용으로 게임도 즐기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평범한 기술들을 조합해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닌텐도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현장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닌텐도.이 회사가 세계 동시불황에도 성공 신화를 일굴 수 있었던 건 시구레덴 같은 독창성 때문이다. 2004년 내놓은 게임기 '닌텐도DS'와 2006년 선보인 비디오 게임기 '위(Wii)'가 대표적이다. 'DS'와 '위'는 작년 말까지 세계에서 각각 9622만대와 4496만대가 팔려 대히트했다. 덕분에 닌텐도는 2004년 이후 3년간 매출이 3.2배,영업이익은 4.4배로 불었다.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는 매출 1조8200억엔(약 27조3000억원),영업이익 5300억엔을 달성할 전망이다. 예상대로라면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일본 상장사 중 이익 규모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닌텐도가 연달아 세계적 히트상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교토 본사에서 만난 닌텐도 개발본부장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56)는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의 결과"라고 말했다. "10여년 전부터 게임 인구가 줄면서 회사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위기감에 휩싸여 그동안 게임을 하지 않던 어른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탄생한 게 터치펜으로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는 'DS'와 온 가족이 거실에서 즐길 수 있는 '위'다. " 그는 "게임기는 생필품이 아니어서 고객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며 "그런 위기의식이 혁신적 제품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 세계적 히트상품의 배경이란 얘기다.

때문에 닌텐도에선 혁신의 출발점인 게임 개발자가 늘 중심이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50)을 포함해 경영진 6명 중 4명이 게임 개발자 출신이며 본사 직원 1465명 중 1000여명이 개발 인력이다. 20년 이상 게임만 개발해온 40~50대의 '게임 장인(匠人)'들도 수두룩하다. 이들은 철저한 도제 방식으로 젊은 개발자들에게 경륜에서 우러난 노하우를 전수한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지식이 창의적 발상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닌텐도는 앞으로도 '가족 영화'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닌텐도의 고객은 5세부터 95세까지의 모든 사람이다. 지금 같은 불황에도 사지 않을 수 없는 게임을 만들 것이다. " '닌텐도DS'와 '위'의 개발 주역으로 '게임계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미야모토 전무의 목표다.

교토=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