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들만 먹었던 치즈 … 낙타가 준 '우연의 선물'

발효주의 대표격인 와인을 마실 때 동반할 음식으로 먼저 치즈를 떠올린다. 같은 발효식품에서 오는 닮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와인과 치즈 모두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탄생했다. 오랜 세월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발전을 거듭,지금은 유럽 음식문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둘 다 맛뿐 아니라 향과 텍스처에도 중점을 두고 즐겨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숙성을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향미가 강한 오랜 전통의 와인과 치즈는 숙성을 거쳐야 걸작품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와인 열풍 속에 와인 관련 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치즈에 대해선 아직 관심이 깊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치즈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관심을 갖게 되면 조만간 치즈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치즈 탄생에 얽힌 일화부터 흥미롭다.

척박한 자연 환경 탓에,농경이 불가능했던 유목민들의 유일한 생존방법은 그들이 키우는 양ㆍ염소의 우유(젖)를 장에 가져가 필요한 식량과 바꿔 오는 것이었다. 우유 담을 용기가 부실했던 그 시절에는 동물 가죽이나 위 주머니를 이용해 우유를 운반하고 보관했다.

한 부유한 유목민 상인이 우유를 위 주머니에 담아 낙타를 싣고 장에 가는 동안 위 주머니 속 효소가 낙타의 움직임과 함께 우유를 자극하고,뜨거운 사막의 열기는 커드(curd)라고 불리는 치즈의 시조인 우유 응고 덩어리를 만들었다. 위생이 철저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동물 점액이나 효소가 남아 있었을 것이고,그 효소는 현재 치즈 생산에 꼭 필요한 레닛(rennet)으로 우유를 굳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즈를 생산할 때 우유를 섞어 젓는 커팅(cutting) 동작 또한 낙타의 움직임에서 비롯되었으며,열을 가해 만드는 과정도 사막의 열기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장에 도착한 상인은 우유를 맛보고 사려는 고객들에게 자신있게 우유를 잔에 따라줬는데,웨이(whey)라 불리는 우유 찌꺼기만 흘러 나왔다. 영문을 모르는 그가 원인을 밝히려고 위 주머니를 칼로 잘라 보니,우유 덩어리인 커드가 말랑한 모습을 드러냈다. 화가 난 상인은 커드를 땅에 내팽개쳤다. 때마침 배가 몹시 고팠던 한 행인이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이끌려 그 덩어리를 먹어 봤고,너무나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식욕을 자극해 이후 장이 설 때마다 여러 상인들이 우유 응고 덩어리를 가져다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서아시아,아랍권의 음식에 사용되는 치즈는 초창기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치즈를 먹는 식습관과 제조방식은 그리스ㆍ로마를 거쳐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중세에는 치즈가 너무 귀하고 비싸 부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성직자나 공직자들에게 봉급을 대신해 치즈를 지급하기도 했고,이탈리아의 권력 있는 부유한 귀족들은 다른 나라의 유명 치즈를 공급받아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법을 구해 직접 치즈생산에 뛰어들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부유층 중에는 제조법을 전해주지 않는 타 지방이나 다른 나라 치즈 생산자들을 암살해 다른 이들도 그 치즈를 못 먹게 했다는 속설도 있다.

그 당시의 치즈는 오랜 보관이나 장거리 운반이 어려웠기에,그 지방에서 생산된 농가의 치즈에 국한됐다. 그러다 19세기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지대한 공헌으로 치즈의 세계화와 대량 생산화가 급속히 이뤄졌다. 파스퇴르는 치즈뿐 아니라 유산균을 이용한 유제품과 와인이나 식초의 발달에도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우리에겐 유제품 광고를 통해 친숙해졌다.

치즈는 우유의 종류와 품질에 따라 그 맛ㆍ향ㆍ숙성방법이 달라진다.

이에 대해선 다음 주에 알아보자.

/음식문화컨설턴트 toptable22@naver.comㆍ사진=김진화 푸드 포토그래퍼